“실제 제 친구들 이야기… 시청자들, 가짜는 안 봐”

[창·작·가] 드라마작가 위소영

위소영 작가가 지난 1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작업실 밖에서 포즈를 취했다. 위소영 작가 제공

요즘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 어렵다.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로 제작된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고 ‘대박’이 났다. 배우 이선빈 정은지 한선화가 주연을 맡은 술도녀는 30대에 접어든 세 친구의 일과 사랑, 일상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그렸다.

작품을 쓴 위소영(38) 작가와 지난달 30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티빙 사옥에서 만나 인터뷰할 예정이었지만, 지난주에 만난 지인이 코로나19로 확진됐다는 연락을 받은 위 작가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부득이하게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술도녀는 그가 공동집필이나 보조 작가가 아닌 메인 작가로서 처음 쓴 드라마다. 위 작가는 “SNS도 잘 안 해서 시청자들의 호응이 이 정도인 줄 모르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연락이 정말 많이 오더라”며 “OTT에 공개돼서 그런지 처음엔 젊은 친구들한테서 주로 반응이 오더니 최근에는 엄마한테서도 전화를 받았다”며 웃었다.

술도녀는 줄거리나 캐스팅 면에서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 작가는 “배우들이 남성 또는 다른 연령층이 보기에도 매력적으로 연기를 잘한 덕분인 것 같다.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우정을 잘 담아줬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공감 가는 에피소드와 지극히 현실적인 대사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그는 “요즘 시청자들은 ‘진짜’와 ‘가짜’를 기막히게 구별해내고, 가짜 같으면 보지 않는다”며 “현실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옮기려 했다. 퇴고할 때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부분은 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의 포스터. 티빙 제공

현실적인 대본을 쓸 수 있었던 건 드라마의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 친구와 술을 소재로 하는 형식은 미깡 작가의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에서 따왔다. 하지만 여주인공 세 명은 위 작가, 그리고 절친한 두 친구의 모습을 소희(이선빈 분) 지연(한선화 분) 지구(정은지 분) 캐릭터로 재현해낸 것이다. 좋은 반응을 얻은 요인에 대해 그는 “모든 게 진짜인 것들의 시너지”라고 분석했다.

특히 드라마 속 소희 이야기는 대부분 위 작가가 겪은 일이다. 빨리 퇴근하려고 일찍 일을 끝내놓으면 또 다른 일이 떨어져 결국 야근을 한 것, 술김에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해고된 것 등은 실제 경험이다. “술을 마시면 ‘갑’인 사람들에게 많이 대든다. 방송국에서도 학벌 좋은 피디들에게 ‘뭐 공부했냐, 전과는 뭐 풀었냐’ 공격했다”며 “술자리에서 실수해 더 못 보게 된 관계도 있는데 그걸 드라마에 녹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세 여주인공의 연기에 대해선 극찬했다. 그는 “특히 지연 역할을 할 사람이 제 친구 지연이 말고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선화씨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간단하지 않은 캐릭터라 선화씨가 질문도 많고 걱정도 많았다”며 “‘진짜 이런 사람이 있냐, 그런 말투로 말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기에 제가 친구 말투를 그대로 보여주고 동영상으로 찍게 했다”고 말했다.

작업실에서 지인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서울의 오피스텔에서 오래 살던 위 작가는 답답할 때면 근처에서 노지 캠핑을 할 수 있는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해 반려견과 함께 산다. 위소영 작가 제공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정식 PD가 위 작가와 친구들이 만나는 자리에 나간 적도 있다. 촬영 전에 ‘진짜’를 보고 싶어서였다. 위 작가는 “PD님이 술도녀 속 남자들처럼 된통 당하셨는데 ‘촬영장에 갔더니 똑같은 캐릭터들이 또 있더라’면서 트라우마를 호소하셨다”며 깔깔 웃었다.

연기가 부담돼 처음엔 배우들도 날이 서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대본 리딩을 하려고 만난 날 회식이 예정돼 있었는데 제가 다 같이 회식하지 말고 세 배우 따로, 제작진 따로 하자고 제안했다”면서 “그날 세 배우가 재밌게 놀고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신의 한 수였다”고 말했다.

세 주인공이 10년 전 걸그룹 춤을 함께 추면서 친구가 되는 장면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나왔다. 정은지는 걸그룹 에이핑크, 한선화는 시크릿 출신이다. 그는 “대본에 ‘춤춘다’라고밖에 안 썼고 배우들이 원치 않는다면 뺄 각오도 했는데 열심히 해줘서 미안하고 고맙다”며 “이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아이돌 춤추는 장면을 안 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배우들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연습하는 동영상을 찍어 보내줬는데 정말 감동했다. 가요 프로그램처럼 잘 찍어주신 감독님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위 작가는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다. 2006년부터 SBS ‘한밤의 TV연예’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짝’ 등에서 작가로 일했다. 드라마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돌아온 길이지만 예능 경험은 드라마의 캐릭터를 잡거나 구성을 짜는 데 자양분이 됐다. 술도녀 첫 회에선 ‘짝’을 떠올리는 상황과 내레이션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짝’을 하면서 다양한 실제 캐릭터들을 만나 공부가 많이 됐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될 땐 지금도 출연진 리스트를 다시 본다”고 나름의 꿀팁을 공개했다.

2015년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보조작가로 참여하면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박해영 작가와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을 공동집필했다. 이어 메인작가 데뷔작인 이번 작품을 제안받았지만,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는 “신인 작가들은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많이 제안받는데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며 “‘여자 셋이 나오고 술 마시는 이야기인데 위소영이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결국은 설득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원작에선 형식만 빌려오고 친구들 이야기를 쓰는 거로 협의가 되면서 ‘아, 그럼 쉽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본을 쓴 위 작가가 가장 많이 애정을 쏟은 장면과 대사는 뭘까. 그는 “동해안의 횟집 할머니가 세 친구에게 했던 사랑 이야기”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위 작가는 “‘사랑들 해. 사랑보다 좋은 게 없어. 밥 먹듯이 해봤다고 휙 건너뛰지 말고 안 해봤다고 미련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그저 시치미 뚝 떼고 처음 해보는 것처럼 예쁘게 해’라는 대사다. 그 부분을 쓸 때 스스로 정화됐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그런 대사를 쓴 이유가 있다. 그는 “40대를 앞둔 시점에서 30대를 돌아보면 사랑이 제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제일 열심히 했다”며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겁내고 가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지 말고 다 해 봐’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면 술도녀 시즌2 촬영이 시작된다.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니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위 작가는 “시즌1을 쓸 때는 ‘이걸 누가 봐줄까’ 싶어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시즌2는 저만 잘하면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OTT의 제작 환경이 공중파보다 자유롭다는 점은 현실 이야기를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해도 촬영 전에 뺀 내용이 많다”며 “도박에 관한 내용이나 성적인 표현, 방송가에서 쓰는 은어 등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지 욕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며 “이야기의 주제나 표현 등에서 공중파에선 지나치게 규제했던 것들을 OTT에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부러 더 많이 하는 과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에선 쓰지만 방송에선 쓸 수 없는 표현, 영화에선 허용되지만 드라마에선 허용되지 않는 것들, 허용의 기준에 대해선 더 생각해볼 일”이라고 짚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이 뭔지 물었다. 그는 “당분간은 여자들 이야기를 쓸 것 같다. 정치물이나 풍자,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지만 쓰다 보면 결국 내 이야기,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면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고민,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 작가는 스스로를 ‘노지 캠핑 1세대’라고 칭했다. 경기도 양평에 텐트나 움막을 세우고 반려견인 시바견 두 마리와 함께 ‘불멍’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창작의 영감을 얻곤 한다. 연애하는 이야기를 쓰다가 지치면 언젠가 자연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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