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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왜 단죄를 못해 안달인가

천지우 정치부 차장


‘이재명은 합니다’라고 외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일 전주 연설에서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선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막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중도층 표심을 얻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고 ‘유연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한 듯하다. 너무 경직된 태도보다는 유연한 게 당연히 낫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 후보를 향해 “역사왜곡 단죄법을 제발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저 말을 하고 싶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재명표 정책들 가운데 ‘역사왜곡 단죄법’이 단연 넘버원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광주에서 “역사왜곡 단죄법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통과시킨 ‘5·18 역사왜곡 처벌법’보다 범위를 넓혀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진실의 왜곡, 독립운동 비방, 친일행위 찬양까지도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사이다야, 진즉에 그랬어야지’라며 고개를 끄덕일 분이 많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이 후보뿐 아니라 민주당 자체가 역사왜곡 단죄법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지난 5월 김용민 의원 등은 3·1운동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일제를 찬양·고무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역사왜곡 방지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대한변호사협회가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는데 구구절절이 옳다. 변협은 “목적의 정당성만을 앞세운 대단히 선동적인 입법”이라며 “전체주의 국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입법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와는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곡이라고 평가받을 정도의 치졸한 접근은 토론과 비판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태시킬 수 있을 만큼 우리의 국민의식은 성숙해 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역사왜곡 행위를 자연스럽게 도태시킬 수 있다는데 왜 계속 법을 만들어 처벌하려는 걸까.

이런 법제화를 우려하는 학자도 많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기억이 법제화되는 순간 과거가 우리의 현재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했다. 5·18 왜곡 처벌법과 같은 논리로 반대 진영에서 6·25 남침이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자를 처벌하자는 요구가 터져 나와 사회가 엉망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는 역사왜곡 처벌법이 제정될 경우 오히려 왜곡하는 자들이 법정에 섰을 때 그들에게 다시 없는 선전의 기회를 주게 된다는 이유로 “그 악의에 대항하는 무기로 처벌 ‘법’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스페인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사회노동당 정부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찬양하거나 프랑코 정권에 희생당한 이들을 모욕하는 경우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한 ‘민주주의 기억법’을 승인했다. 스페인판 역사왜곡 단죄법이다. 이걸 스페인 국민이 얼마나 환영하는지는 모르지만 영국 신문 더타임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고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라며 “자유롭고 열린 사회는 그들의 역사를 지우려고 애쓰기보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후보는 지난 10월 페이스북에서 “지금 우리 모두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광주의 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며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역사왜곡 단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그토록 어렵게 이뤄냈는데, 왜 지금 민주주의에 반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 후보는 전주 연설에서 “내 신념에 부합해서 주장하는 정책들이 있어도 국민이 동의 못하면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말했다. 난 반민주적 입법에 동의 못하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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