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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살에 빠진 골 때리는 그녀들 “이 재밌는 걸 남자만…”

[열린 체육관 열린 생활체육] <상> 전북 남원 ‘선데이 모닝’

전북 남원 여성 풋살팀 ‘선데이 모닝’의 김보금씨와 소주희·주연 자매(왼쪽부터)가 지난 1일 남원거점공공스포츠클럽 실외풋살장에서 슛 연습을 하고 있다. 남원=윤성호 기자

전북 남원의 한 고등학교 보건교사인 변경혜(29)씨에게 축구는 ‘남자들 운동’이었다. 교정을 거닐 때면 학교 운동장에선 항상 남학생들이 축구를 했다.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어쩌다 애들이 찬 공이 날아오면 잘 차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인구 8만여명의 소도시에 여성이 축구를 배울 곳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수도권에는 많을 것 같은데 남원에는 없을 것 같아서” 한동안은 아예 찾아볼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축구가 계속 눈에 밟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했더니 여성 풋살팀이 하나 있었다. 그가 입은 흰색 유니폼 상의 가운데 영어로 적힌 ‘선데이 모닝’(SUNDAY MORING) 팀이다.

지난해 6월 팀에 합류한 경혜씨는 “사람들과 땀 흘리며 운동하다 보니 ‘이 재밌는 걸 남자들만 하고 있었구나’ 했어요. 여자들이 축구에 접근하는 게 흔하진 않잖아요. ‘해보면 재밌는데 왜 안 할까’ 싶어서 주변에 권유해 팀에 들어온 분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1일 경혜씨를 비롯해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남원 이백면의 남원거점공공스포츠클럽 실외풋살장에 모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오후 7시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지만 긴 상·하의 트레이닝복만 입은 채 풋살화를 신고 약 40×20m의 넓이 풋살장 곳곳을 뛰어다녔다. 뜨거운 날숨을 뱉을 때마다 마스크 빈틈으로 하얀 연기가 새어 나왔다.

“너무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발맞춰서 천천히!” 코치 역할인 김양택(39) 관리매니저가 외쳤다. 주황색 콘을 두고 두 사람이 2대 1 전진 패스를 주고받은 뒤 골문 앞에서 슛을 때렸다. 드리블 훈련 때는 김 코치가 수비를 맡고 한 명씩 제치는 연습을 했다.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단에서 뛴 적 있는 소주연(22)씨가 보디페인팅으로 제친 뒤 미소를 짓자 김 코치는 “아악~” 웃음기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남원 여성 풋살팀 ‘선데이 모닝’은 지난해 3월 첫발을 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협업하고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학교체육시설 개방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팀이다. 방과 후, 휴일 등에 학교체육시설을 개방해 시설이용률을 높이고 지역주민의 스포츠활동 참여로 지역사회의 생활체육 저변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당초 계획대로면 남원 오동초등학교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의 학교 출입이 막히면서 대체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다. 남원거점스포츠클럽 김광수 행정팀장은 “사업 신청을 할 때부터 ‘대체시설 운영형’ 유형으로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일요일 아침에 모이기에 팀명을 ‘선데이 모닝’으로 지었지만 실제로는 한 주에 3차례 모인다. 평일인 월·수요일은 퇴근 후인 저녁에, 일요일은 오전이다. 주장 김보금(30)씨는 “일주일 중 축구를 하는 3일이 늘 기다려지고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못 갈 때면 괜히 막 답답하고 뛰고 싶죠”라고 말했다.

국악 전공자인 보금씨는 축구광인 남편의 축구 동호회를 따라다니다가 흥미가 생겨 선데이 모닝에 들어왔다. 남편과 관계도 돈독해졌다. “만날 ‘위험할 땐 발 빼라’ ‘몸싸움하지 마라’ 혼나요. 제가 좀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웃음) 축구를 시작한 뒤로 서로 존중하게 된 것 같아요. 남편은 새벽에 꼭 (해외) 축구를 봐야 하는 친구라서 예전엔 ‘왜 저러나’ 했는데 지금은 이해하죠.”

2년 가까이 호흡을 맞추면서 실력도 늘었다. 동생 주연씨의 영향으로 축구에 관심이 생겨 팀에 들어온 소주희(25)씨는 “동생한테 못한다고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제가 큰소리칠 수 있어요. 체력도 좋아졌고 몸 쓰는 법도 알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보금씨도 “초기에는 누가 넘어지거나 조금만 다쳐도 모두 달려가 안절부절못했다면 이젠 그렇진 않죠”라고 말했다. 김 코치는 “예전에는 다른 팀과 시합을 두려워했는데 요즘에는 시합을 잡아달라고 먼저 요청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팀원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20~40대 여성이 15명이 모여있다. 경혜씨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겨서 좋아요. 40대분들도 열정 넘치시고, 운동할 땐 나이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보금씨는 “서로 애칭도 붙여주고 평소에도 전화하고 밥이나 술자리 가지면서 친하게 지내요. 이렇게 적은 회비(월 1만원)로 운동도 시켜주고 물품도 지원해주고 활동할 수 있게 되니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남원=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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