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돈 없다, 희망도 없다… 동네 사장님들 ‘절망’ [이슈&탐사]

[팬데믹이 삼킨 사람들, 소상공인 수난 리포트] ① 낭떠러지에 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은 작은 음식점과 소매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입니다. 소비 행태가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이들 대다수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배달 대행 등 플랫폼과 디지털 전환의 공세가 더해져 많은 소상공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창간 33주년 기획으로 한계에 이른 소상공인의 현실을 보여주고 대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보도합니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4달 전 폐업한 심태섭(56)씨가 지난달 29일 현재 거주하는 고시원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심씨는 식당에서 먹고 자다 폐업 이후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한결 기자

심태섭(56)씨는 지난 8월 24일 서울 구로구에서 운영하던 고깃집 문을 닫았다. 가게를 시작한 건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지난해 6월. 10여년간 여러 식당을 해온 그는 새 가게 오픈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방역이 세계 최강이다’ 이런 자화자찬이 있을 때였거든요. 소비도 살아나는 것 같았고….”

100㎡(30평) 규모의 고깃집에 직원도 4명을 뒀다. 하지만 개업 두 달 만에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8월 중순 이후 감염자가 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다. 개업 첫달 3000만원을 기록했던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7만~10만원 판 적도 있습니다. 영업 자체가 제한됐으니 전단지를 돌리든 꽹과리를 치든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52만원인 가게였다. 직원 월급에 재료비,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내고 나니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그나마 그게 지난해 말까지 이야기이고 그 뒤부턴 월세를 못 내고 직원 월급도 주지 못했다. 직원을 줄이고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버티다 지난 2월 대출을 받았다. “대출받은 돈으로 여러 빚을 싹 다 갚고 3000만원을 더 대출받았는데 인테리어 미지급금 등을 내고 3월 말 되니까 또 돈이 없더라고요.”

심씨가 지난달 29일 고시원 방 안에서 외투를 벗고 있는 모습. 이한결 기자

장사를 그만두기로 했지만 바로 폐업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게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휴업 상태로 4~5개월 가게를 비워두다 지난 8월 겨우 폐업했다. 남은 건 1억원에 가까운 빚과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압류된 통장이다.

폐업 4개월여가 지난 지금 심씨가 택한 길은 청소 노동이다. 휴업 기간 배달 대행을 해봤지만 한 차례 사고가 난 뒤 ‘목숨 걸 자신이 없어’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인 소개로 들어간 청소업체에서 몇 달간 일을 배우면서 청소로 다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목표가 있잖아요. ‘다시 설정하고 살아가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40년 장사했는데…“감당 어려워요”

한국은 소상공인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한국법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9년 전국사업체조사 결과를 재편, 가공한 자료에 따르면 소상공인 업체는 전체 사업체의 84.8%인 328만여개였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살아남는 소상공인은 많지 않다. 법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는 소상공인 3년 생존율을 29%로 보고 있다. 10곳 중 7곳은 개업 3년 안에 망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는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놓인 소상공인을 더욱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른 긴급 소상공인 실태조사’(숙박업 음식점업 각 150개사 대상)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57.3%가 휴·폐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생업 터전이던 가게의 문을 닫고 향하는 곳은 대부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일자리다. 노년층 등 일부에게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박기백(가명·73)씨도 서울 강남구에서 칼국숫집을 하다가 지난달 장사를 접었다. 폐업 6일 뒤 거주지 인근의 주민센터에 찾아가 ‘할 일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할 일자리는 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40여년간 칼국숫집을 운영해온 박씨는 지난해 2월 2층짜리 가게를 새로 열었다. 코로나19가 상륙했다지만 오랜 기간 같은 장사를 해 왔기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코로나19 확산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하루에 170만원은 벌어야 현상 유지가 되는데 20만원, 40만원 이렇게 파니까 하루에 몇 십만원씩 어딘가에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8명이던 직원을 4명으로 줄이고 대출을 최대한 받아도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사채까지 끌어 썼다. “진작 그만두면 손해를 덜 봤을 텐데 ‘내일은 좀 낫겠지’ 하고 끌고 나가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어요.”

박씨는 가게를 폐업하고 보증금으로 사채부터 갚았다. 1억원에 사들인 가게 집기는 폐업하고 350만원을 주고 팔았다. 앞으로는 월 30만원 기초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남은 대출금 4000만원을 갚고 생계를 이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박씨는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안 좋은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정말로 나쁜 생각도 들어요. 나이는 들었지 이게 사는 게 아니잖아요. 말이 안 나와요.” 그는 ‘혹시나 일자리가 생기면 연락주겠다’는 주민센터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폐업에 평균 1700만원 든다

소상공인들은 가게 운영이 어려워도 쉽게 폐업을 선택하지 못한다. 폐업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이를 치르고 나면 초기 투자금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폐업하면 돈벌이 수단을 잃은 채 빚만 남게 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0년 소상공인 재기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평균 폐업 소요 비용은 1699만원이다. ‘소상공인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 지원’에 참여한 폐업 소상공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지난 1월 15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들에게 폐업의 구체적인 원인을 묻자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라는 응답이 83.4%로 가장 많았다. 폐업 당시 평균 부채 규모는 7222만원이었다. 16.8%는 부채 규모가 1억원 이상이라고 답했다.

폐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성규선 소상공인연합회 서울 성동구 지회장은 “큰 가게는 철거에 원상복구만 해도 3000만원 이상이 든다”고 전했다. 임대차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원상복구 의무가 적혀 있을 경우 임차인은 변형한 공간 등을 원상복구하고 나가야 한다. 점포 원상복구 공사비에 부동산 중개 수수료, 사업장 양도 공지(홍보) 비용, 밀린 임대료 납부까지 폐업 비용을 생각하면 사업 정리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성 지회장은 “얼마라도 건지고 폐업하려 해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니 대부분 빈털터리가 돼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창업하면서 구매한 조리도구, 가구 등 설비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려 나간다. 임애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폐업 컨설턴트는 “폐업하는 사람이 넘쳐나다 보니 집기도 헐값에 가져가거나 잘 받아주지 않아서 돈 주고 버리기도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결국 소상공인들은 폐업 시 투자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비용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이마저도 대출금이 많으면 손해를 보고 폐업한다. 폐업 정리 업체 ‘사업정리컨설팅’의 강종헌 컨설턴트는 “창업 초기에 투자했던 비용에서 보통 15~30% 정도를 회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업체의 임병규 컨설턴트는 “소상공인은 대부분 생계형으로 빚을 내서 창업에 뛰어든다”며 “가게가 무너지면 원금에 대출금까지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창업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면 폐업 과정에는 별 다른 지원을 하지 않는다.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및 역량 강화’ 보고서에 따르면 소상공인 창업을 돕는 사업에 편성된 예산은 폐업 관련 사업 예산보다 13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에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정책(소상공인 포함) 101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소상공인의 철수 및 퇴출에 특화한 사업에는 단 2.1%(3217억원)의 예산만 편성돼 있었다. 반면 창업 특화 사업에는 28.8%(4조4204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중기부 외 주요 부처에서는 소상공인에 대한 철수 지원 예산이 전혀 없었다.

중기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점포 철거 비용 최대 200만원과 사업 정리 컨설팅을 제공하는 ‘희망리턴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르고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철거 비용 200만원은 현실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 지회장은 “보통 폐업 지원 제도가 있는지도 모른다”며 “200만원으로 철거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어 가게 크기에 따라 자부담도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일용직·배달 라이더로

사업 정리 비용을 치른 소상공인들은 대출금을 안은 채 빈털터리로 다시 사회에 나오게 된다. 이들은 대출을 갚고 생계를 이어가려고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향한다.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40여년째 자영업으로 살아온 김미숙(가명·72)씨도 지난 5월 고깃집을 폐업한 뒤 대출을 갚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은 식당이나 단체 급식소에서 하루에 10~12시간씩 일용직으로 일한다. 두 아들은 배달 일을 시작했다. 고깃집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던 이들은 주거지를 잃고 방 한 칸짜리 월세에서 함께 지낸다.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한 사람도 적지 않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0년 소상공인 재기실태조사’에서 폐업 이후 현재 경제활동 상태에 대해 질문한 결과 14.5%가 ‘경제활동 포기’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재기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62.1%로 가장 많았다. 현재 ‘취업 상태’라고 응답한 109명(10.9%)의 취업 형태를 묻자 ‘비정규직’(계약직, 아르바이트)이라는 응답이 45.9%로 가장 많았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식당 밤 장사가 한동안 안되면서 낮에만 장사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상공인이 많았다”며 “폐업한 사장들은 주로 배달 일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폐업을 거친 소상공인들은 정서적으로도 타격을 입는다. 강 컨설턴트는 “폐업을 하게 되면 ‘사회의 실패자’라고 생각해 사람을 기피하고 나중에 우울증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도 영향을 받는다. 성 지회장은 “부모가 자영업을 하는 가정은 경기가 안 좋을수록 가게에 매달리게 되는데 자녀들이 방치돼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서가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박세원 이동환 권민지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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