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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불의 마술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도자기는 여러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도예가는 흙을 고르고 모양을 만들고 물레를 돌리고 무늬를 새기고 안료나 유약을 바른다. 그리고 두 번의 소성 과정이 이어진다. 도예가의 면밀한 손길에 의해 모양을 갖춘 도자기는 가마에 들어가 불 속에서 완성된다. 대개 800도 정도의 초벌 소성 후 1250도의 고온에서 다시 구워진다.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도예가의 꼼꼼하고 인내심 있는 수고 위에 20시간 이상의 불의 시간이 더해져야 한다. 도예가들은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의 세기나 방향에 따라 도자기의 색과 무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예가들은 모른다. 고온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유약이 어떤 빛과 모양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예상한 색과 모양이 나오지 않아 실망하기도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신비스러운 색과 무늬를 얻어 흥분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시간이 도예가들이 적극적으로 무얼 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기물들을 가마 안에 재어 넣고 나면 더 이상 그가 할 일은 없다. 가마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은 도예가가 아니라 불이다. 불은 기물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회오리치고 스며들며 미완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기물이 도자기가 된다. 불이 기물을 도자기로 만드는 동안 도예가는 밖에서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 기다림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 않고 바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간절해지는 것이다. 기다림의 일은 기도에 가깝다. 불은 일하고 사람은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불이 일을 잘하기를 기도한다.

이런 기다림,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물을 만들 때 최선의 노력을 들여 수고한 사람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설렘도 기대도 없을 것이다. 공들여 수고하지 않았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완성하는 데 불의 작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맞지만 이 말이 사람은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다거나 건성으로 대충대충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최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지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르헤 보르헤스는 ‘원형의 폐허들’이라는 짧은 소설에서 꿈을 통해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하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한다. ‘한 인간을 꿈꾸어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 이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거듭 시도한 끝에 마침내 이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 보르헤스는 이 과업의 완성이 ‘불의 신’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고 기술함으로써, 사람의 최선의 노력과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을 동시에 강조한다. 사람은 최선을 다해 수고해야 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힘, ‘불의 신’의 입김이 보태져야 한다. 반대의 서술도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없이는 일의 완성이 가능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작용은 사람의 최선의 수고 위에 얹어지는 것이다. 어떤 성취를 자기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모든 것을 요행이나 우연의 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손 놓고 지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이다.

언제나 그렇듯 한 해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돌아보고 다짐할 기회를 가지라고 시간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연말과 연초는 그런 시간이다. 사람들은 어떤 돌아봄과 어떤 다짐을 할까. 1년을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것보다 그 1년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돌아봄과 다짐은 달라질 것 같다. 이뤄진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가마 안에서 나온 도자기들 가운데 어떤 것은 만족스럽지만 어떤 것은 실망스럽다. 만족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불의 도움을 감사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내 수고와 노력이 충분하지 않은 건 아닌지 반성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편이 오만해지지도 나태해지지도 않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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