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시론

[시론] 교육정책이 형, 동생 싸움이 돼선 안 된다

박성수 ‘개천의 용, 공정한 교육은 가능한가’ 저자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 교육은 준비를 하고 있는가. 두뇌로 결판나는 시대, 교육의 힘으로 세계 일류 국가로 올라설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교육은 수시냐 정시냐,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이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냐 등을 두고 ‘공정’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다투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배워야 할 걸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나마 논쟁이라는 것도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념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객관식 수능은 당연히 객관적 공정성이 있지만 지역·계층 간 격차, 사교육비 격차를 감안할 때도 공정한지 의문입니다. 수능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에세이 방식으로 바뀌었을 때도 객관적 공정성만을 강조할지 의문입니다. 학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객관식 시험 성적이 대학에서의 학습 능력과 창의성, 사회적 품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일부의 일탈로 전체가 매도를 당하고 있습니다.

새 시대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는 객관식 문제풀이에 특화된 학교로 퇴화해 가고 있습니다. 성적 중심 학교로 퇴화하는 바람에 다양한 교육 여건이 필요 없게 되는 역설적 상황입니다. 분필과 칠판 그리고 객관식 연습 문제집만 있으면 족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의 발현이라는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여건은 도외시되고 있습니다.

수영장, 피트니스 시설, 오케스트라 연습실, 녹음 스튜디오, 뮤지컬(연극) 연습실, 도자기 가마, 요리 실습실, 디자인실, 과학실 등을 고루 갖춘 학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수능에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과학실험실을 충분히 갖추고 충실하게 실험을 하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요. 교과서를 외우는 것이 진정한 과학 학습인지, 실험과 관찰로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을 배양하는 게 진정한 과학 학습인지는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학교는 첨단 시설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 교육이 앞서갈 기회입니다. 그런데 학력 저하를 이유로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이제는 학력 개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성적·석차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강조하듯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이 돼도 그 앞에는 AI가 있으니까요.

고교학점제는 새 시대의 준비입니다. 학생 하나하나의 타고난 적성을 살리는 학교를 만드는 일입니다. 산업시대의 교육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변혁의 출발입니다. 우리 학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우리 초중등 교육에 투자가 다 이뤄져서 재원이 넘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고, 심지어 이를 고등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폅니다.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 재정의 문제를 대학생 형과 중학생 동생의 싸움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초중고 교육이 튼튼해야 대학에서의 학문적 수월성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질 높은 보통교육 없이 고등교육만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등교육의 재원은 별도로 확보해야 하는 국가·사회적 과제입니다. 해방 후 설립된 거점국립대학의 시설은 낙후돼 있습니다. 동생들 학교처럼 ‘그린스마트 캠퍼스’가 필요합니다. 우수 교수를 초빙하고 첨단 연구 시설도 확대해야 합니다. 국력에 어울리는 세계 10위권 대학을 육성하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동생 것 뺏어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 국력을 감안하면 초중등 교육에 대한 지속적 투자 확대와 함께 제대로 된 고등교육 투자도 함께 가야 하고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박성수 '개천의 용, 공정한 교육은 가능한가' 저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