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영적 생기 북돋는 쉼표… 목회자 취미와 영성

“야구, 구원·희생의 스포츠”

게티이미지뱅크

“젊은 시절에는 스포츠를 즐기지만, 나이가 들어 운동하기가 어려울 때도 취미생활을 해야 합니다.”

복음주의 거장 존 스토트(1921~2011)가 40여 년 전 한 말이다. 그는 국제복음주의기독학생회(IFES) 남미 지도자수련회에서 크리스천 리더가 영적 생기를 유지하기 위한 ‘쉼과 휴식의 훈련’으로 취미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새 관찰’을 소개한 그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 실린 ‘새, 우리들의 선생님’이라는 책까지 펴냈다. 스스로 ‘조류신학’ 혹은 ‘새의 신학’이라고 이름 붙인 존 스토트는 세계 9000여 종의 새 가운데 2500종을 관찰했다. 구순 문턱에서도 자신의 맡은 바가 ‘말씀을 지키고 연구하며 적용하고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명을 잊지 않았다.

목회자의 삶은 유리알 같아서 개인적인 취미와 여가활동을 일반인처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과 동병상련의 삶을 함께하다 보면 감정적·육체적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한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누적된 스트레스로 탈진하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 악전고투하며 ‘정도목양’을 이어가고 있는 목회자들의 ‘취미와 영성’을 살짝 들여다봤다.

‘천파체 졸필’이라지만 교인들은 “달필”
강민석 선임기자

천파(天波) 박종순(82·사진)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자칭 ‘졸필가’다. 하지만 교인들의 평가는 ‘달필가’다. 아직도 수많은 교인은 매년 이어지는 자정 예배(송구영신)를 기다린다. 박 목사가 친필로 쓴 액자를 받기 위해서다. 글씨는 딱 한 자 ‘길’이다. 기도하면 길이 열린다는 의미가 담겼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오직 예수만 길이라는 뜻도 배어있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 중 20명을 추첨해 전달한다. 결혼한 교인에게는 주례사를 하며 ‘둘이 하나다’는 다섯 글자 액자를 전달한다. 창조 원리를 설명한 후 평생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후배 목사나 제자들이 위임하면 ‘정도목양’(正道牧羊)을 써준다. 정치인이나 사업을 하는 이에게는 ‘정도’(正導)라는 두 글씨를 선물한다. 40여 년간 1000여 점을 전달했다.


박종화(76·사진)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고전음악 듣기를 아주 좋아한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때면 곡조 있는 설교를 듣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훌륭한 독창도 좋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성곡찬양을 들으며 ‘신앙은 음악’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박 목사는 틈틈이 깊은 독서에도 빠져든다. 깊은 시에 끌리는가 하면, 테마가 있는 문화사상사를 좋아하고, 시대적 담론을 즐겨 읽는다.


젊은 시절 발레리나였던 요나3일영성원 원장 이에스더(75·사진) 목사의 건강관리 비결은 수영이다. 이 목사는 유산소 운동이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고 말한다. 10년째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1시간씩 수영한다. 25m 코스를 돌며 왕복 20바퀴(1000m)는 기본이고, 욕심이 날 때는 50바퀴(2500m)까지 기록할 정도로 강한 인내심을 기르며 건강을 관리한다.

야구의 ‘희생’과 ‘구원’은 기독교 핵심


이성희(73·사진) 연동교회 원로목사는 야구 마니아다. 이 목사가 야구를 좋아하는 까닭은 야구의 경기 룰이 그리스도인의 순례 길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순례 길에서 감독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인’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이래서 야구는 나의 취미를 넘어서 나의 거룩한 순례이며 경건한 묵상이지요.” 야구는 ‘희생’이라는 용어와 ‘구원’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희생타’는 내가 죽고 동료를 살리는 것이며, 선발투수를 대신하는 선수를 ‘구원투수’라고 한다. 이 목사는 “희생과 구원은 기독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용어들이다”라면서 “야구의 감독은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듯이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성진(67·사진) 거룩한빛광성교회 원로목사는 조화와 균형을 모른 채 목회에 전념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 전형적인 일 중독자였다. 그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두 가지 취미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전도사 시절 가끔 야생화를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교회를 개척한 이후 목회에 전념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4년 휴대전화에 줌 카메라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국내외 어디를 가든지 꽃을 찾아서 셔터를 누른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만 7만 장에 달하고, 사진전도 3차례 열었다고 했다.

머그잔 수집하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담길 원해


이영훈(67·사진)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의 취미는 반려견과 산책하기와 예쁘고 특이한 머그잔 수집하기다. 바쁜 일정으로 따로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러 매일 나간다. 산책하며 단풍이 지거나 해가 빨리 지는 것을 볼 때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에 더욱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 목사는 미국 유학 시절 주님의 잔이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담길 원하는 마음으로 대학교 머그잔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수집한 머그잔을 보며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릇인가를 생각하고 성회를 인도했던 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뜨겁게 예배했던 시간을 떠올리곤 합니다.”


김경문(66·사진) 순복음중동교회 목사는 30여 년째 설교 준비를 위해 여러 신문, 잡지를 보면서 자료 가치가 있는 것들을 골라 분류해 모아둔다. 이런 자료나 정보를 참고해 설교하거나 강의해서인지 신학교 학생들 사이에선 ‘움직이는 도서관’으로 통한다. 집안의 화분이나 열대어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자랑한다.


목사 안수를 받은 황성주(64·사진) 이롬 회장은 사진 촬영과 여행을 즐긴다. 여행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대자연의 모습을 담는 기쁨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므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5차례 개인 작품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도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소강석(59·사진) 목사는 다재다능한 ‘만능 목회자’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이는 흉내 낼 수 없는 소 목사만의 메시지 원천은 바로 등산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부교역자들과 뒷산(일명 한성산)을 오른다. 그의 끊임없는 목회 열정과 문학적 감수성은 모두 산행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땀을 흘리고 자유롭게 산을 오르면서 자연 친화적이고 시각이 고정되지 않은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독특한 설교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목표를 정하면 포기하지 않는 근성도 산길에서 배운다. 인문학 시리즈 등 각종 기획도 등산 중에 나온 아이디어들이다.

유튜브 부캐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바지’


이형노(52·사진) 중앙감리교회 목사는 ‘찬양 토라’라는 유튜브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추세에 맞게 부캐도 만들었다. ‘모세의 지팡이’를 줄여서 ‘모팡’으로 활동하고, 함께 진행하는 부목사는 ‘다윗의 바지’를 줄여 ‘다바’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목사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가 좋고 찬양이 좋아서 불렀던 것이 지금은 교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채널이 되었다고 빙그레 웃었다. “매주 누군가 신청한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 연습하며 저 자신에게도 가사가 주는 은혜와 찬양하는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취미와 여가활동 자체가 중·소형교회 목회자, 시골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사치’나 ‘허영’이 될 수 있다는 비판론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건강한 목회를 하려면 긴 안목에서 건전한 취미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전한 취미활동은 영성을 강화하는 보약 같은 것이다. 이영훈 목사는 “목회자가 건강을 잃으면 목회다운 목회, 설교다운 메시지를 전할 수 없게 된다”면서 “목회자들이 이 점을 명심하고 균형 있는 건강 유지를 위해 적당한 취미는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종순 원로목사는 ‘과유불급’이라는 교훈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예수에 미치고 목회에 미쳐야 해요. 다른 데 미치면 절대 안 돼요. 바울 사도가 자신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던 것처럼 목회자는 누구든지 자기와의 싸움에 이겨야 합니다.”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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