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인데 고작 대출 지원… 결국 기업 일자리 확대가 해법 [이슈&탐사]

[팬데믹이 삼킨 사람들, 소상공인 수난 리포트] ④·끝 ‘사장님’들이 사는 길

사적 모임 최대 인원이 지난 6일부터 수도권 6명, 비수도권 8명으로 제한된 가운데 정부는 거리두기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부부가 지난달 28일 손님 없는 식당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 윤성호 기자

경기도 안산에서 음식점을 했던 A씨는 최근 가게 문을 닫고 배달기사(라이더)로 일하고 있다. 장사가 안될 때에 비해 수입은 더 낫지만 ‘식당 사장’ 꿈은 사라졌다.

서울 구로구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다 폐업한 B씨는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월세가 밀려도 폐업만은 피하려 버텼지만 대출이 불어나면서 몸뚱이만 남게 됐다. 그는 “저녁 9시만 되면 길거리가 조용해졌다. 사람들 삶의 패턴이 바뀌어버리니까 직원을 줄이고 혼자 일해도 수지가 안 맞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소상공인 퇴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A씨와 B씨처럼 ‘사장님’에서 플랫폼 노동자나 일용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단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을 구하기 위한 여러 지원책을 정부가 강력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 변화를 인정하고 이에 부합하도록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소상공인은 임금노동 시장에 편입시켜 안정적 소득 기회를 제공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당장은 직접 지원 늘려야”

소상공인을 위한 단기 대책으로 직접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대출 형식의 금융 지원이 높은 편이다. 이런 지원 방식은 상당수 소상공인에게 갚아야 할 빚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소상공인들은 현 수준의 손실보상금(10만~1억원, 하한액 50만원으로 인상 예정)은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 한 지역 소상공인연합회 지회장은 “10만~30만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았지만 피해액보다 손실보상금이 너무 적어 업주들 불만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관련한 다른 대안으로 한국형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이 제시된다. ‘부채 탕감형 대출’로 불리는 PPP는 소상공인이 대출금을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등 가게 운영에 사용한 것이 확인되면 상환액 일부를 탕감해주는 제도다. 즉각적인 자금 융통을 가능하게 하면서 가게 유지 비용은 정부가 분담하는 방식이다. 기존 저금리 대출과 달리 직접 상환 금액을 줄여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이재명 대선 후보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 소속의 한 연구원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지원사업에 성실하게 임한 소상공인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 등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지난 6일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교육과 디지털화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규선 소상공인연합회 서울 성동구 지회장은 “행정은 스마트한 시스템으로 바뀌지만 우리 소상공인들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아 혜택을 볼 수 있는 사업에 신청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어디서도 디지털 교육을 해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해 9월 소상공인 7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 중이라는 응답은 15.4%에 불과했다. 디지털화 필요성을 느끼는 소상공인도 29.7%로 낮은 수준이었다. 20~30대 소상공인은 디지털화 인프라와 지식을 갖췄으나 자금이 부족했고 40~50대는 자금은 상대적으로 여유롭지만 디지털화 인력과 지식이 확보되지 않았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지난 6월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현황 및 단계별 추진전략’ 보고서는 디지털화 수준에 따른 맞춤형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통적 영업방식을 고수하는 70%에 대해서는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하고 스스로 디지털 전환을 이루지 못하는 25%는 자신의 상권 주변부터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디지털 전환이 가능한 5% 소상공인에는 스마트기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시장 대책과 함께 가야

소상공인 대책은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대책과 떨어질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정한 일자리’ 증가다. 통계청의 지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4만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용역 근로자는 58만5000명으로 5.9% 증가했다. 반면 정규직 근로자는 1292만7000명으로 9만4000명 줄었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이유는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코로나19가 불확실성 증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기 불황이나 위기 국면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이 확대될 수 없어 해고된 근로자들은 다시 불안정한 일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날이 불확실한 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초기에는 공항, 면세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 실직 제보가 다수였고 올해에는 숙박업 식당업 등 소규모 자영업의 직원들 실직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인구 고령화 현상으로 증가 폭이 더 커지고 있다. 폐업한 소상공인이나 실직한 사람의 상당수는 60세 이상인데, 재취업 과정에서 이들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다. 서울 강남구에서 칼국수집을 하다 지난달 장사를 접은 박기백(가명·73)씨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60세 이상 고령층의 비정규직 종사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의 29.8%(240만3000명)가 60세 이상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7만명 증가한 규모다.

‘정규직 보호 중심’ 틀 바꿔야

전문가들은 특수형태근로자, 프리랜서, 초단기노동자 등 다양해진 노동형태에 맞춰 고용안전망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 사회안전망은 고용보험 기반으로 설계돼 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김도균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고용보험은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며 “근본적인 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2025년까지 전 국민의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내년 상반기 중 플랫폼 종사자와 특수형태근로자 중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확정하고 자영업자의 단계별 적용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노동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국민을 실업급여를 통해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로드맵이 순탄하게 완성될지는 미지수다. 소상공인과 소규모 사업장을 고용보험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유인이 강하지 않다. 1인 소상공인은 최대 5년간 20~50% 고용보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가입률은 저조하다. 50명 미만 사업체도 실업급여, 직업능력개발사업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주는 1%도 안 된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처음부터 폐업을 생각하면서 창업하는 소상공인은 많지 않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이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가게 문을 닫은 소상공인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큰 폭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에 종사 중인 노동자를 재교육할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류기락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사회 전환에서 다른 일자리로 대체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 다수가 청년이나 여성”이라며 “이들이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직무로 이동할 수 있게끔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 중심의 민간 노동 시장이 활성화돼야 코로나19 충격을 상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노동시장 충격이 1~2년 내 해결될 단기적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 사라진 일자리는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단기 일자리 제공과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통해 노동시장을 받쳐왔지만 이 같은 정책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채용을 해야 노동시장이 코로나 이전의 정상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자영업자 중에서 일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선택한 경우가 많은데 고용이 잘 이뤄지면 자영업자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박세원 이동환 권민지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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