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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1일 문화 생활권… K콘텐츠 지금부터 시작”

[인터뷰 사이]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는 충무로 연출부로 출발해 ‘7번방의 선물’ ‘신세계’ ‘밀정’ ‘마녀’ 등 많은 영화의 제작과 투자, 배급에 관여했다. 그는 “지금은 산업 생태계가 바뀌는 혼돈의 시대이자 기회의 시대”라며 “그 중앙에 놓인 게 한국 콘텐츠라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기대와 흥분이 된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2021년 한국대중문화계는 실로 눈부신 한 해를 보냈다. 올봄 배우 윤여정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BTS는 여름 내내 ‘버터’로 10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군림했다. 가을과 겨울에는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잇달아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 세계 1위에 올랐다. 외신들은 ‘한국문화 쓰나미’(BBC) ‘한국은 어떻게 문화계 거물이 됐나’(뉴욕타임스) ‘한국의 콘텐츠가 할리우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블룸버그통신)며 K콘텐츠의 약진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제작 현장에서 보는 K콘텐츠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올해 ‘지옥’과 ‘D.P.’를 넷플릭스로 선보이며 연타석 홈런을 친 변승민(39)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변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작품 리스트가 적혀있는 화이트보드였다. 제작이 확정된 작품만 13편, 검토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벽 한 면을 채운 커다란 보드가 빼곡했다. 극장, TV,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넘나들면서 현재 가장 많은 작품을 준비하며 주목받는 제작사다웠다.

-한국이 세계 미디어 시장의 주류에 입성했고, K콘텐츠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로소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영미권 외의 국가들은 공정한 선에서 출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어 때문에 확산되는 속도가 늦었고 인구 측면에서도 시장 규모가 작았다. 팬데믹 동안 OTT에 적응한 시청자들이 자막을 보고 더빙으로 듣는 것에 익숙해졌다. 다른 언어로 된 콘텐츠에 대한 경계가 많이 사라졌다.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류도 히스패닉, 아시아인, 흑인으로 바뀌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 자막의 장벽’이 OTT를 통해 무너진 것인데, K콘텐츠의 성공은 글로벌 OTT의 활성화에 힘입은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 콘텐츠를 다른 나라에 보여줄 수 있는 경로와 시간도 단축됐다. 전 세계가 1일 문화 생활권이 된 느낌이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성과를 놓고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문화강국으로 전환에 성공함으로써 선진국의 위상을 갖추는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외국분들이 궁금해하면 ‘한국에 와서 살아보면 알 수 있다’고 답한다. 한국은 유일한 휴전국이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역동적이고 기술 변화 속도도 빠르다. 그래서 소재가 많고 발언도 자유로워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 다양한 이야기들이 세계 콘텐츠 소비자들과 공통분모를 형성해 사랑받지 않나 생각한다.”

-‘지옥’과 ‘D.P.’ 모두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지옥’의 연상호 감독도 대중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마니아적 취향의 작품들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요즘 사랑받는 작품은 결국 화제성, 이야깃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찬반과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많은 질문과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 더 나아가 유희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 관심을 받는다. ‘오징어 게임’은 많은 밈과 놀이가 나오면서 재창작이 일어났다. 콘텐츠도 일차적이고 수동적인 소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당신들이 만든 걸 바탕으로 우리는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재미를 줄 수 있는, 오히려 뾰족함이 중요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옥’과 ‘D.P.’의 흥행을 통해 ‘이런 게 세계에서 통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은 부분이 있나.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만든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도 다양한 질문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한 답보다 유의미한 질문이 많이 담긴 콘텐츠라면 한국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볼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시장을 재단하지 말자고 했다. ‘이런 장르라서 이런 소재라서 이 정도의 관객만 좋아할 거야’라고 앞서서 한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안팎에서 ‘왜 지금 K콘텐츠인가’라고 궁금해한다. 이 질문에 윤여정은 “우리는 언제나 늘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릴 주목한 것뿐”이라고 했다.

“모든 작품은 과거 유산에 기대고 있다. ‘기생충’ 이전에 ‘올드보이’가 있었고, 그 이전에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가 있었다. BTS도 SM과 JYP가 계속 세계시장을 두드린 것을 바탕으로 꽃을 피웠고, 그 꽃을 피우기 전까지 땅에 떨어진 수많은 씨앗이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물꼬를 트며 확산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로 흔히 가성비를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창작자들의 높은 수준을 첫손에 꼽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창작자를 만든 건 대중들이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데뷔작 대본을 직접 쓴다. 다들 그걸 제일 힘들어하면서 할리우드처럼 작가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엄청난 자산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훈련에 익숙해져서 한국 감독들은 영상 연출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꾼으로서 기능하게 됐다. ‘오징어 게임’ ‘지옥’ ‘D.P.’ 모두 감독들이 각본에 참여했다. 한국 감독들이 멀티로 활동하는 독특한 풍토와 재능이 외국 감독과 비교했을 때 놀랍고 뛰어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에 대해 언급했는데, K콘텐츠의 경쟁력 중 하나로 ‘온 국민이 평론가’인 한국인들의 높은 안목을 드는 경우도 있다. 마블이나 007시리즈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닌가.

“한국에서 영화와 드라마는 가장 즐기기 쉽고 가성비 좋은 문화 형태다. 그만큼 한국 관객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한국 대중의 시야도 넓고 깊다. 창작자들이 그 눈높이에 맞춰야 하니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루면서도 재미있어야 하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이어야 한다. 모든 관객이나 시청자가 지지자인 동시에 감시자이고, 협력자인 동시에 비평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관객이 창작자들을 업어 키웠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의 성과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폄하한다.

“추천받은 알고리즘을 판단하는 것도 대중들이다. 거기에서 선택받고, 또 추천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숙제이자 목표다. 한국 콘텐츠를 경험해본 소비자들이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신뢰를 갖고 있는데 그 경험 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좋은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제 ‘한국적인 것’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 말을 좋아하고 동의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 해석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당신 자신 안에 우주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당신이 만들 수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것인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한국적이라는 게 단순히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것, 우리만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지옥’은 한국 사회를 잘 들여다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됐다고 생각한다.”

-홍콩의 칸토팝과 일본의 J팝, 홍콩영화와 일본영화도 한때 주목받았지만 주류가 되지 못했다. K콘텐츠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제2의 BTS, 제2의 오징어 게임, 제2의 지옥 같은 작품이 이어져 그 총합이 주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흐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OTT 플랫폼의 산업적인 생리 자체가 확산성을 기대하는 것인데, 이 기회가 K콘텐츠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 태국 남미 유럽 각국의 모든 콘텐츠가 동일한 기회를 얻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이 탄생할 토대가 넓어졌고, 절대강자와 절대약자가 없는 또 다른 측면의 공정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처럼 넷플릭스에 의존하면 제작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토종 OTT도 해외로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하청업자가 된다는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중국이 한국 콘텐츠에 많은 투자를 했을 때 종속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똑같이 나왔다. 그런데 이후 한한령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유통되는 데 제약이 커졌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한국 콘텐츠의 주요 시장이던 때가 있었지만 변화가 있었고, 우리는 항상 새로운 길을 찾았다. K콘텐츠가 지속되려면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는 한국의 글로벌 OTT가 나와야 한다. 그런 날이 올 수 있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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