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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그런 공정은 위험하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기후위기, 능력주의, 부동산, 지방소멸, 선진국, K…. 2021년 한 해 동안 나온 책들을 돌아보며 간추려본 논점이다. 이 중 능력주의는 올해 출판에서 가장 뜨겁게 다뤄진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연간 베스트셀러 6위(교보문고)를 기록할 정도로 많이 읽혔고, 사회비평가 박권일이 쓴 ‘한국의 능력주의’도 주목을 받았다. 연말에 나온 문유석 전 판사의 ‘최소한의 선의’ 역시 헌법을 통해 능력주의 담론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들이 쓴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와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학벌주의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비판에 속한다.

이 책들은 우리가 공정의 기준으로 삼아온 능력주의를 착각이나 허구라고 주장한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능력, 차별, 공정이란 개념은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다. 박권일은 능력주의가 성립하려면 세습이나 상속과 같은 외부 효과가 배제된 상태에서 개인의 능력이 측정돼야 하며, 재능 노력 기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차등 분배에서 비례가 정확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분배 기준으로 가장 공정해 보이는 노력조차도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능력주의가 허구라고 비판한다.

더 큰 문제는 능력주의에 따른 분배에서 비례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 이익, 부동산 불로소득, SKY의 지위 독점, 서울과 지방의 격차 등 승자독식이 능력주의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능력주의는 공정이나 정의로 여겨진다.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불공정이고 부정의라는 비판에 휩싸인다. 이제 능력주의와 이에 입각한 공정론을 극복하지 않고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게 됐다. 능력주의 비판이 열기를 띠게 된 이유다.

공정은 이번 대선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상식, 법치, 공정을 내세웠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는 “공정이 상식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1일 샌델 교수와 공정을 주제로 화상 대담을 가졌다. 하지만 두 후보가 공히 강조하는 공정이 능력주의와 얼마나 다른 건지는 알기 어렵다. 공정하게 한다는 것이 반칙이나 특혜를 없앤다는 의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능력주의에 포획된 공정은 위험하다. 문유석은 책에서 ‘완벽하게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다. “입사 경쟁을 뚫은 후에도 끊임없이 실적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는 가차 없이 해고되어 성과를 낼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의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100%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해도 바깥에 120% 일할 의지가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것은 ‘공정한 지옥’이다. 공정은 능력주의에 머물지 말고 더 나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게 뭘까. 문유석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헌법 조항을 제시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분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정이고 정의가 아닐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과 ‘인간의 존엄성’을 향하지 않는 공정은 위험하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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