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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암흑기… 고스펙자도 인턴 다회차 필수

일자리 출발부터 갈리는 ‘소득 격차’
대기업·중소기업 연봉 2배 차이
기업 시스템 변화… 경력직 선호 뚜렷


청년 일자리 ‘암흑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각종 자격증이나 어학점수, 인턴경력 등 ‘스펙 전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준비생들의 스펙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누가 봐도 ‘고스펙’을 지닌 청년들조차 ‘중고신입’의 길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졸업을 앞둔 청년들은 사실상 경력직과 경쟁하는 상황이어서 신규 취업에 나서는 청년들의 취업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직장인 송모(28)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스펙 쌓기’에 매진했다. 졸업 당시 그는 서울 상위권 4년제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학점 평점 4.0 이상(4.5점 만점), 토익 900점대에 일본어, 중국어 어학 자격증까지 갖췄다. 송씨는 일반 기업 공채에 지원하기에 무난한 상위 스펙을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일반 기업 공채에서 서류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업난을 겪었다. 결국 송씨는 2년 동안 총 3곳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한 뒤에야 지난해 11월 정규직 취업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스펙용 인턴’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초 미디어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우선 합격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마구잡이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송씨는 2018년 여름 한 중소기업에서 경영직 인턴을 할 수 있었다. 소규모 기업 인턴직이었지만 그마저도 겨우 따냈다. 송씨는 1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정규직이 할 법한 업무를 하며 경력을 쌓았다. 업무는 9시에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출근해 ‘사내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는 직원은 인턴’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송씨는 정규직 전환 기회를 얻지 못했다.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른 인턴으로 공백을 메우려 한 것이다. 결국 송씨는 2019년 여름 다른 중소기업에 신규 인턴으로 들어갔고, 이곳에서도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1년을 지냈다. 이후 ‘경력자를 우대한다’며 신입 정규직 직원을 뽑는 미디어 분야 중소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송씨는 “첫 회사에서 어느 날 부사장이 다가와 ‘너처럼 좋은 대학 나오고 똑똑한데 싸게 쓸 수 있는 가성비 넘치는 사람 주변에 또 있는지 추천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했지만 내 경쟁력을 하루빨리 쌓아 안정된 곳으로 가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게 하는 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 7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준생 1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적은 ‘체험형 단기 인턴십’도 고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단기로 진행되는 체험형 인턴에 지원하고 싶은 이유로는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77.9%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취업에 있어 꼭 필요한 스펙이라고 생각돼서’(36.4%) ‘직무를 미리 파악하고 탐색해보기 위해서’(28.4%) 등 순으로 나타났다.

취업 문턱 높인 기업과 싸우는 청년들

기업 운영 시스템의 변화도 중고신입 증가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당장 업무에 투입해도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채용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경력직 선호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7일 기업 397개를 대상으로 최근 2년 새 채용 비중을 묻자 65.5%가 ‘경력 위주’, 34.5%가 ‘신입 위주’라고 답했다. 올해 채용한 직원 중 신입직원 대 경력직원의 비율은 평균 4대 6으로 경력직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취업준비생들은 ‘인턴 다회차 중고신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취준생 박모(25)씨는 “우선 인턴을 해서라도 취업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도태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출발선에서 크게 갈리는 ‘소득 격차’도 중고신입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임금직무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5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체의 연평균 임금은 7098만원인 데 비해 5~29명이 근무하는 사업체는 4134만원이다. 특히 중위 50%의 연평균 임금은 500명 이상 사업체가 6413만원, 5~29명 사업체는 3198만원으로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탓에 청년들은 어떤 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향후 인생 경로가 달라진다고 여긴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통해 인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순히 경력이 큰 기업에 가기 위한 이력서 채우기용으로 활용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생산성을 낮추는 인재 낭비가 될 수 있다”며 “기업도 적재적소에 인재를 투입하기 위해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선 중고신입이 증가하는 사회적 흐름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계층이동 사다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인력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 단절적인 구조였지만 경력을 쌓는다면 이동이 가능한 형태로 취업시장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며 “경력 자체를 중시하는 채용 문화가 확산한다면 여러 계층 청년들의 기회가 넓어지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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