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반독재 투쟁 중 고난 닥칠 때마다 뜨거운 기도

<5>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결혼하신 지 6개월 만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군함도’에서 일하다가 갱도(지하 2㎞)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함께 끌려간 친구분이 아버지를 업고 나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살아 돌아오셔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의 순수하고 강렬한 신앙이 저에게 고스란히 유전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라 처음에는 나태하게 시작했지만, 철이 들수록 하나님의 뜻과 가까운 길을 선택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병약했던 아이가 가난을 딛고 일어서 5선 국회의원에 농림부 장관까지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와 최선을 다한 신앙생활이 빚어낸 축복의 산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무엇보다 자식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이기를 원하셨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얻은 가장 좋은 유산은 돈도 명예도 아닌 신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새벽마다 무릎 꿇고 “주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또 건강을 주시고 제가 선한 양심에 따라서 저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고난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며, 아름다운 신앙유산을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려 합니다.

저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5남매의 장남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우체국에 사환으로 취직해 1년간 스탬프를 찍고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읍내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그 기쁨이란…. 가난한 사람, 용기를 내어 올곧게 가면 하나님께서 그 앞길을 반드시 선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강진농고 졸업 후 동생들을 가르쳐야 해서 농협에 임시직원으로 근무하고 월남전에도 자원했습니다. 귀국 후 기독청년운동, 농민운동, 유신독재 철폐 운동을 벌였고 5·18 항거 기독교인 추모 예배 중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석방된 후 고향 목사님들이 2박 3일 기도를 하신 후에 저에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못 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이 “양치는 목동이 국회의원이 됩니다. 아멘 하세요.” 우여곡절 끝에 김대중 선생께서 13대 국회 강진·완도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를 제안하여 당시 평화민주당에 참여하게 됐고 초선의원으로 등원 후 5.18 광주청문회 현장 조사위원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어둠이 새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악은 한때 승리하나 영원한 정복은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크리스천 정체성을 확인하고 불의와 정의를 구별하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고난이 닥쳐도 항상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여주실 것입니다.

<약력> △농림부 장관 △5선 국회의원 △3·1운동(5·18광주민주화운동/4·19혁명)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기념재단 이사장 △세계기독의원연맹(WCPA) 창설자 초대 총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