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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대선 캠프에 줄서는 예술가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원작으로 1995년 개봉한 동명 영화는 미국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리프 주연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감독 겸 남자 주인공 역의 이스트우드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대역으로 스트리프를 낙점했다. 당시 스트리프는 그녀의 영화 커리어에서 슬럼프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에 있었는데, 이 영화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를 통해 각별한 사이가 된 두 사람이지만 정치적 입장은 정반대다. 스트리프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 안에서도 골수 지지자다. 반면 이스트우드는 오랜 공화당 지지자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스트우드가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히자, 스트리프가 또 다른 인터뷰에서 “클린트와 대화를 통해 바로잡고 싶다. 내가 아는 클린트는 섬세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과 별도로 두 사람은 영화에 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영화를 통해 진보와 보수 양쪽의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스트리프의 경우 ‘철의 여인’에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 역을 연기했을 때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대처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대처를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트리프의 정치적 관점에서 대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여성 서사에 늘 관심을 표명해 온 스트리프의 이력을 생각할 때 대처를 연기한 이유가 납득 간다. 이스트우드 역시 이라크전에 참전한 저격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나이퍼’로 논란을 겪었다. 이 작품은 전쟁을 미화하고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긴다는 비판과 동시에 참전 군인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며 반전 메시지를 전한다는 옹호를 동시에 들었다. 이스트우드의 경우 공화당원이지만 평소 전쟁에 반대하고 총기 규제와 임신중절에 찬성하는 등 진보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스트리프와 이스트우드처럼 미국의 연예인이나 예술가가 자신의 지지 정당을 밝히는가 하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 후보를 위해 후원금까지 모금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이와 비교해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이나 예술가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수년 전에도 정치적 입장을 명백하게 밝힌 연예인이 공영방송에 나오는 것이 문제라는 여론이 있었던 것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연예인이나 예술가가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 성향과 지지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그것을 이해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다만 극히 일부지만 대선 이후 ‘콩고물’을 생각하고 캠프를 기웃대는 경우도 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캠프에 줄을 섰다는 예술가들의 이름이 들려온다. 이들이 스트리프나 이스트우드처럼 자신의 정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문화예술 단체와 기관의 수장으로 내려온 캠프 출신 연예인과 예술가의 존재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이들 중에는 예술가로서 존재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관을 운영하기에 함량 미달인 사례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시절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협하는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계는 큰 트라우마를 입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 무능한 화이트리스트의 폐해는 블랙리스트 못지않았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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