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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다’ 평창 때 다짐… 베이징서 보여줄 것

[니하오! 베이징 2022] <6> 쇼트트랙 국가대표 황대헌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황대헌이 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G-30 미디어데이 공개 훈련에 임하고 있다. 진천=권현구 기자

2018년 2월 23일 황대헌은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메달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다.’

당시 19세였던 황대헌은 고등학생으로서 생애 처음 올림픽에 출전해 순탄치 않은 신고식을 치렀다. 1500m 결승에서 마지막 2바퀴를 앞두고 넘어졌고, 1000m 준준결승에선 결승선에서 넘어지며 3위로 골인했으나 비디오판독 끝에 실격됐다. 하지만 500m 은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 남자 쇼트트랙 역사상 3번째 고등학생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땐 아쉬웠던 경기가 많았어요. 계속 훌훌 털고 일어나려고 노력했죠.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였는데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이라고 되뇌었던 날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으로 거듭난 황대헌은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을 위해 막바지 담금질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황대헌은 5일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은 제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발판이 된 시합인 것 같아요. 그 후로 1년, 1년 계속해서 발전해왔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것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황대헌은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 유력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2021-202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자부 1위를 기록했고, 베이징행 티켓이 걸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대회개인전에서는 남자 1000m(1·3차)와 500m(2차) 우승을 차지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전력 약화 등을 감안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한두 개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의 주인공이 황대헌일 거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황대헌은 인터뷰 내내 메달보다 ‘최선’ ‘성장’ ‘노력’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물론 메달이 중요하고 금메달을 따낸다면 좋을 거예요. 하지만 몸 상태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고, 오랜 시간 훈련했던 것들을 후회 없이 모두 보여주면 성적은 알아서 따라올 거라 생각해요.”

황대헌은 5살 때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 경기도 안양빙상장에 놀러 갔다가 ‘재미있어 보여’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스케이트는 재미있었다. 미끄러지는 빙판, 앞으로 달리는 속도, 마주치는 바람 등 모든 게 즐거웠다. “진짜 재밌게 탔어요. 넘어져도 안 울고 계속 탔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에 빨간 날 위에 얹어진 노란 스케이트 그림 안에 ‘황대헌. 나의 꿈~ 숏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는 문구를 썼다.

황대헌은 누군가를 이길 때보다 연습했던 걸 실전에서 써먹을 때 재미를 느낀다. 그는 “저도 사람이니까 잘됐다가 안 됐다가 하잖아요. 쇼트트랙은 변칙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니까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될 때도 있고요. 그런데도 연습했던 걸 확실히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때 더 스릴 있고 성취감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반대 상황에서 온다. “스스로한테 스트레스를 받아요. 연습할 때 운동량을, 생각했던 만큼 달성하지 못하거나 테크닉을 성공하지 못했을 때요.”

큰 슬럼프는 없었지만, 힘든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발과 허리에 함께 부상이 왔다. 운동화도 신기 힘들 정도로 발이 아팠지만 환부를 칼로 째 고름을 짜내고, 굳은살을 칼로 깎아내며 스케이트를 탔다. 고강도 훈련으로 허리가 주저앉아 걷지 못할 정도였는데도 주사를 맞고 재활운동을 하며 스케이트를 탔다.

“주변에서 미련하다고 했죠. 운동을 말렸는데 제 의지라서 소용이 없었죠. 멈추기 싫었어요. 후회할 것 같았죠. 그냥 열정이었던 거 같아요. 스케이트 인생을 돌이켜보면 매 시즌 후회 없는 시즌을 만들려고 했던 거 같아요.”

코로나19로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당시 국민들은 메달보다 선수의 투혼에 매료됐다. 황대헌은 “다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저도 운동하는 입장이니 그들도 남들 모르는 고충을 겪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게 느껴지잖아요. 저 역시 올림픽에 한 번 나가보긴 했지만 배울 게 진짜 많아요. 메달이 있든 없든, 메달 색이 무슨 색이든 노력한 걸 후회 없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가 됐어요. 더 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죠.”

2018년 2월 22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m 은메달을 딴 황대헌이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받은 수호랑 인형을 들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평창올림픽 이후 4년간 황대헌은 “조금이라도 부족한 걸 섬세하게 채우려고” 노력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황대헌은 “이동하는 것도 힘들고, (해외로) 시합 가는 것도 솔직히 무서웠어요”라고 했다. 해외 전지훈련도 예전처럼 할 수 없었다. “진천선수촌 환경이 정말 좋지만, (해외) 고산지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 좋거든요. 한국은 고산지대가 아니니까 좀 아쉽긴 했어요.”

그럼에도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끈덕지게 훈련하고 있다. 쇼트트랙 감독 자리가 공석인 데다 최근 심석희 사태로 분위기가 뒤숭숭할 것이라는 외부 우려와 달리 황대헌은 “생각처럼 어수선하지 않고 훈련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주장 곽윤기에 대해선 “선배이면서도 친구 같은 편안한 주장이고 훈련 때는 진지하게 팀의 중심을 잡아줘요”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를 탈 때면 스트레칭 걸음 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황대헌이지만, 그 밖의 시간은 여느 20대 청년과 다르지 않다. 그는 “방탕하게 놀진 않고요.(웃음) 놀 땐 게임밖에 안 해요. 롤(리그 오브 레전드)을 많이 해요”라고 말했다. 걸그룹 블랙핑크를 좋아하는데 제니가 ‘최애’다. 쑥스러운지 “노래가 좋아요”라며 웃었다. 운동이 힘에 부칠 땐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된다. “운동 외적으로 일상 얘기를 해요. 남동생이랑 전화하는 순간만큼은 스트레스 잊으니까 다시 힘내고 운동을 하고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황대헌은 “쇼트트랙이라고 하면 사람들 입에서 ‘황대헌’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황대헌을 말하지 않냐’고 되묻자 “아직 멀었다”며 웃었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올림픽을 앞두고는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하루 3차례 훈련을 갖는다. 새벽 5시50분부터 시작되는 훈련은 오후 6시가 돼서야 마친다.

황대헌은 “아직 (몸 상태가) 몇 %라 말씀은 못 드리지만 고강도 훈련을 집중력 있게 소화해간다면 올림픽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꼭 좋은 모습,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라고 당부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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