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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尹, 오죽하면 ‘연기’ 얘기 나왔을까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압도적 정권교체를 이루겠다.” 국민의힘 입당 전인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다. 당시에는 카피 잘 뽑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단순히 대권이 아니라 시대를 삼킬 것 같았던 그가 요즘 한참 나락에 빠져 있다. 아마 지금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과연 윤 후보한테 대선 후보라는 자리가, 또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직이 어울릴지를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우려가 나오는 기저에는 출마 선언 뒤 반년이 지나도록 윤 후보가 단순히 현 정부에 대한 저항의 떡고물이 아닌, 스스로 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윤 후보는 조국 사태가 빚어낸 벼락스타다. 그가 특별히 뭘 잘해서가 아니라 여권의 무리수가 만들어낸 부산물 스타였다. 평생 검사만 하다 준비 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탓에 갑의 위치에 익숙한 검사티가 여전하고 공허한 공정만 외칠 뿐 그 이외 어떤 다른 비전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윤 후보 캠프는 자질의 부족함을 연기(演技)로 채우려 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윤 후보가 가진 자질이 얼마나 부족하면 연기라도 시켜야 할 판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선거 기술자’인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해 기술로 선거를 이겨보겠다는 것부터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기술에 더해 연기로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야 할 판이라니….

얼마 전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사과 기자회견도 연기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었다. 뭘 진정성 있게 사과하겠다는 뜻보다는 사과의 형식을 빌린 연기로 경력 부풀리기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로 전 세계를 제패한 나라에서 그 정도의 어설픈 연기와 멘트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캠프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다.

당대표가 잔뜩 준비해 놓았다고 자랑하는 ‘비단주머니’도 마찬가지다. 그게 윤 후보의 약점을 가려주는 방패막이가 됐든, 상대 후보를 찌르는 비책이 됐든 간에 진실을 가리는 술수를 쓰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주머니일 테다. 과거 여당의 ‘드루킹’만큼이나 불순한 의도로 비친다. 윤 후보에게 ‘말하기 기술’을 가르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철학 없는 인재 영입에 골몰하는 것도 후보의 자질이 부족하니 다른 것으로 점수를 따자는 심산 아니겠는가.

윤 후보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나한테 시간을 좀 달라. 확실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대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 다른 모습이 연기의 연장선이어선 안 될 것이다. 유권자들은 포장되지 않은 윤 후보 그 자체를 보고 싶어 한다. 평생 검사만 하느라 정책적 측면에서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정책을 발표하더라도 솔깃하게 듣는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지율 좀 떨어졌다고 윤 후보가 갑자기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공세에 나서는 것도 안 좋아 보인다. 대선 후보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진력해야 하는데, 연일 당내 정치인들과 헤게모니를 다투느라 힘을 다 빼고 있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민은 탈여의도 정치를 원하는데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어 여의도 정치를 속성 과외한 게 아닌가 싶다.

유권자들은 윤 후보로부터 지도자로서의 덕성과 국정 수행 의지, 국민 삶에 대한 공감 능력, 세대와 이념 성향을 넘어선 포용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 게 갖춰져 있으면 대통령이 돼서도 좋은 정책을 선별해내고 실행에 옮길 수 있고, 또 국민을 통합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윤 후보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아직 준비가 덜 돼 있기에 특히 사람을 잘 쓸 수 있을지를 알고 싶어 한다. 김 전 위원장이 윤 후보와 결별하면서 “사람을 쓰는 안목이 없다”고 비난했듯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 이른바 ‘윤핵관’을 비롯한 측근 그룹에 휘둘리지 않고 참인재를 선별해낼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은 결국 그한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남은 기간만이라도 연기하는 윤석열이 아니라 진솔하고 진실된 윤석열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안철수 보험을 찾게 될 것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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