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내 안에 어둠 비추어 영원한 섭리를 드러내소서”

영적 전쟁의 과정을 詩로 써 구원으로 인도한 ‘말씀의 시인’ 존 밀턴

게티이미지뱅크

17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존 밀턴(1608~1674)의 생애는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됐다. 그는 세 번이나 결혼했고 아내와 자녀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또 정치에 정열을 쏟았지만, 왕정복고로 인해 자유 공화국에 대한 꿈을 잃었다. 여기에다 육체의 시련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실명과 관절염으로 한때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 그러나 절망과 고독의 심연에서 신앙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그 결과 ‘실낙원’ ‘복낙원’ ‘투사 삼손’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마치 신으로부터 추방됐다가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와 구원을 얻듯이 상처 많은 인생의 마지막을 빛나게 한 것이다. 그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인생을 위대한 승리의 드라마로 역전시킨 승리자였다.

청교도 시인, 논쟁의 바다로

존 밀턴(사진)은 영국의 청교도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성직자가 될 뜻을 품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국왕 찰스 1세의 종교정책에 반감을 품어 그 뜻을 버리고 종교시인이 되기 위해 신학과 더불어 고전문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죽어버린 교회와 감독제의 지배를 받는 교회에서 노예 생활하기 싫어 성직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저서 등에서 진술했다. 그는 1632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6년간 런던 호턴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선과 악의 갈등을 담은 ‘코머스’ ‘리시다스’를 발표, 이후 20년간 일관성 있게 청교도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 평론을 주로 썼다.

그는 ‘영국에서의 교회 규율 개혁에 대해’(1641)에서 영국교회가 진실한 내적 자유를 갖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고 ‘감독제에 반대하는 이유’(1642)에서 성공회의 감독제를 공격했다. 또 ‘이혼에 관한 교리와 규율’(1643) 등에서 이혼론을 주장했으며 ‘아레오파지티카’(1644) 등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의 글들은 영국 근대정치와 종교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멸의 시인이고자 했던 그가 갈망을 접어두고 격렬한 ‘논쟁의 바다’로 떠난 까닭은 무엇인가? 정치적 출세 욕구 때문이었는가? 그는 ‘감독제에 반대하는 이유’에서 정치 참여가 자신에게는 상당한 희생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영국 청교도혁명을 주도한 올리버 크롬웰의 외교 비서관이자 주요 논객으로 활동했다. 그는 청교도혁명을 완수함으로써 영국이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재생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의 기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1660년 국민의 환호 속에 찰스 2세가 귀국, 왕정복고가 이뤄졌다. 그해 6월 밀턴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으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은둔생활을 했고, 8월 공화정 지지자들을 용서한다는 대사면령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무렵 그는 완전 실명 상태였고 걸작시는 아직 쓰지 못한 채였다. 목숨은 건졌으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입지를 잃고 완벽하게 몰락하고 만다.

이 대목에서 그의 작품 ‘투사 삼손’을 떠올리게 된다. 삼손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하나님과의 서약을 깨고 무절제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떠나셨고 삼손은 블레셋 군에 잡혀 두 눈을 뽑힌 채 밧줄에 묶여 맷돌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삼손은 다곤(이방신)의 축제일에 죄를 깊이 뉘우치고 “주 여호와여 구하옵소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삼손은 힘을 되찾아 다곤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최후를 맞는다. 밀턴은 극시 ‘투사 삼손’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최선이다. 이루 헤아릴 길이 없는 지혜로운 배려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때로 우리는 의심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것이 최선의 것이었음이 판명된다.”(‘투사 삼손’ 중) 이 말은 주인공 삼손의 일생, 더 나아가 밀턴의 일생을 총괄한 말이다.

밀턴은 삼손처럼 실명했으며 실패와 좌절을 맛봤다. 밀턴은 삼손과 같은 영웅적 행동을 할 때 잃어버린 낙원, 자유와 정의가 가득한 세상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철저히 실패했다. 그러나 ‘자신’이란 우상이 깨지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자 평정이 찾아왔다. 그는 그때 기억했다.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님은 역전시킬 기회를 주셨다.

로고스의 시인, 말씀의 바다로
실낙원을 구술하는 존 밀턴. 외젠 들라크루아 1826년경 작품.

그는 실명 후 절망 속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육체적인 실명이 영적인 실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오히려 영적인 개안을 위해 기도하며 시를 썼다. 실명 후 쓴 시로 추정되는 ‘소네트 19번’에서 순종과, 신의 섭리와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느껴진다. “신은 인간의 업적이나 인간의 재능을 원치 않으신다. 그의 가벼운 멍에를 잘 짊어지는 자가 그를 잘 섬기는 것… 다만 서서 기다리는 자가 또한 섬기는 것이다.”

그는 실명과 실의 속에 인간과 신에 대한 사색에 열중했다. ‘인간에게 신의 의지와 신의 섭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은 그의 시적 상상력을 북돋아 ‘실낙원’(1667) ‘복낙원’(1671) ‘투사 삼손’(1671) 등으로 태어났다. ‘실낙원’에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낙원을 잃은 이야기, ‘복낙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낙원을 찾게 된 이야기를 한다. ‘실낙원’은 전 12편, 1만565행으로 이뤄져 있다. 초판은 10편이었는데 1674년 그가 사망하기 전 12편으로 편성돼 오늘날의 정본이 됐다. ‘실낙원’엔 역경에 처한 가운데 재기를 노렸던 밀턴 자신의 마음이 사탄의 원망과 복수심을 그리는 데 밀도 있게 투영되고 있다.


‘악한 세월과 사나운 혀를 만나고, 위험과 고독에 에워싸이더라도 노래를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마음속 모든 안개가 깨끗이 걷히어 그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 하늘의 빛이여, 더욱더 내 속을 비춰다오. 마음속의 온갖 능력을 샅샅이 밝혀다오. 또한, 그대 눈을 그리로 돌려 마음속의 모든 안개를 깨끗이 거둬다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있도록.”(‘실낙원’ 제3편 중 )


‘복낙원’은 전 4편 2070행으로 구성된 간결한 서사시이다. 유혹하는 사탄과 이를 물리치는 예수의 격렬한 논쟁을 통해, 메시아의 등장과 낙원의 회복을 알리는 지적 서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통해 밀턴은 결국 구원의 길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렸음을 시사하고 있다. ‘복낙원’의 주제는 책의 첫머리에 나와 있다. “내 일찍이 한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상실된 행복의 동산을 노래했으나, 이젠 모든 유혹을 통해 충분히 시련받은, 한 인간의 확고한 순종에 의해 온 인류에게 회복된 낙원을 노래하리라.”(‘복낙원’ 제1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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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창조적 영감을 갈구한 기도 시인이었다. 밀턴은 영적 전쟁의 과정을 내면화한 대서사시인이었고 또한 성서의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말씀의 시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작품을 썼다. 그는 결국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인 빛을 얻었다. “내 속에 있는 어두운 것에 빛을 비추고, 내 안에 있는 비천한 것을 들어 올려 떠받쳐 주어서, 나로 하여금 이 위대한 주제를 제대로 다루어 영원한 섭리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하나님의 길들이 옳음을 인간들에게 드러내게 하라.”(‘실낙원 1편’ 중)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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