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의식 (6) 괴롭히던 선임이 싸놓은 더블백엔 ‘폐의류만 가득’

경비근무 설 때마다 기합 주고 때리다
다른 부대 전출 가게 되자 골탕 먹여
사과 전화에 용서, 전도 기회로 삼아

김의식 목사가 1983년 수도경비사령부에서 군종 사병 생활을 하던 모습. 김 목사는 군 생활이 영성은 물론 체력과 정신력을 연단하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1981년 7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그 후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청와대 경호부대)으로 배치를 받았다. 내가 30경비단에 가게 된 데는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 야간 신학교를 졸업한 후 혜성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금요철야 기도회를 인도할 때였다. 칠순이 넘고 몸도 불편하신 김순례 권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실 때마다 “우리 전도사님, 서울 시내 한복판에 배치돼 우리 교회에 계속 나오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고 하면 광화문 네거리인데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서서 근무하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권사님의 기도는 정확하게 응답을 받았다. 내가 배치받은 곳은 청와대 앞 당시 중앙청 뒤 경호부대였다.

30경비단 생활을 가장 견디기 어렵고 힘들게 한 사람은 같은 소대의 불교 군종사병 김모 상병이었다. 그는 주·야간 복초(두 사람) 경비 근무 때마다 이병인 나를 데리고 가서 질문에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기합을 주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렸다. 그때마다 M16 소총으로 쏴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모든 분노와 울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한 덕분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향해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지 않으셨는가. 그래서 나도 “주여, 원수 같은 그를 내 감정으로는 용서하기 어렵지만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82년 1월 1일 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이현우 당시 30경비단 단장(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 사령부 작전참모로 갈 때 나를 당번병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내무반에 돌아가자 뜻밖에도 그토록 나를 핍박하던 김 상병이 내 더블백 짐을 다 싸놓았다. ‘마지막이라 선행을 베푸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출신고를 마치고 나는 소대를 돌아보지도 않고 북악산을 5분 만에 뛰어내려 왔다. 그런데 사령부에 도착해 더블백을 펼쳤더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짐 안에는 훈련소에서 받았던 군복, 내의, 겨울용 내복, 양말은 하나도 없고 다 떨어진 폐의류만 가득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김 상병은 병장이 되어 전역했는데 어느 날 밤늦게 사령부 군종부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술에 취해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김 일병, 다 용서해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김 병장님, 저는 이미 다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고 가까운 교회에 꼭 나가십시오” 하고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불교 군종사병이었던 그에게 교회 나가라고 한 것이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명력 없는 종교생활을 하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과 변화된 삶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30경비단과 수도경비사령부 생활은 영적인 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강인한 정신력, 굳건한 체력에 이르기까지 치유 목회를 위한 영·혼·육을 연단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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