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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우크라 국운 부탁해”… 협상 팽개치고 집안싸움

젤렌스키 대통령의 숙적 등장에
안전보장 협상 박차고 수도로 복귀
미·러 협상 진전없이 공전만 거듭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키예프 법원에서 열린 재판 전 심문에 참석한 뒤 법정 밖에서 부인 마리나 여사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그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은 정적 관계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지금 국가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겠다고 밝히자 러시아가 국경 쪽으로 병력을 집결시키며 침공 분위기를 조성했고,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 군사개입을 막으려 온갖 궁리를 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서방과 러시아의 협상은 아무런 진전 없이 공전만 거듭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엉뚱한 관심사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바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숙적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등장해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서방·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수도 키예프로 복귀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젤렌스키가 협상장을 벗어난 이유는 협상 진행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국내 문제”라며 “폴란드로 망명했던 포로셴코가 돌아오면서 지지자들이 결집하자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포로셴코는 지난 대선에서 젤렌스키에게 패배한 뒤 현 정부에 의해 국가반역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을 상황에 처하자 망명길에 올랐던 인물이다. 석탄 확보를 위해 러시아와 러시아 점령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과 내통했다는 게 그의 혐의다.

포로셴코의 키예프 입성 첫 발언은 “절대적 위기에 처한 조국을 돕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수천명의 지지자가 모인 자리에서 “젤렌스키가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나와는 전혀 무관한 혐의를 내게 씌워 피의 숙청을 자행하려 했다”고도 했다. 이후 지지자들은 “포로셴코 탄압 철회하라” “젤렌스키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젤렌스키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다자 협상을 제쳐둔 채 대통령궁으로 복귀했다. 포로셴코와의 정쟁에서 승리할 묘책을 찾겠다며 측근과 참모들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로셴코는 2015~2019년 집권 기간 내내 초지일관 친서방 정책을 밀어붙인 반면 젤렌스키는 지난 대선에서 “우크라이나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는 포로셴코 노선보다는 사안에 따라 러시아와 협상하며 국가의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러시아와 협상에 나선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포로셴코가 강력 주창했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입장을 차용하기까지 했다.

현재 미국 중심의 나토 가입 서방국과 러시아의 협상은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나토 가입 입장이 철회되지 않는 한 국경지대에 주둔한 러시아군은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어떠한 묘안도 내놓지 못하고 러시아와의 협상 국면조차 확보하지 못하자 되레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설득해야 할 처지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원칙적으로는 지지하지만 러시아와 완전히 등을 돌리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WSJ는 “젤렌스키는 협상 초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해 3개국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면서 “하지만 아무 호응이 없자 그는 위태로운 조국의 운명을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조차 외세에 둘러싸여 진퇴양난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현재를 책임지지 않을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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