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20대는 보수화된 게 아니다, 과격화됐다

[책과 길] 급진의 20대
김내훈 지음
서해문집, 256쪽, 1만6000원

지난해 ‘프로보커터’라는 책으로 주목받은 젊은 문화연구자 김내훈의 새 책 ‘급진의 20대’는 반정부와 약자 혐오로 표출되는 현재의 ‘20대 현상’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포퓰리즘의 한 양상이라고 본다. 저자는 포퓰리즘은 병리적인 현상만은 아니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내재하는 현상이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또 요구를 매개로 한 ‘우리’와 ‘그들’의 항시적인 투쟁이라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고 본다. Dominic Mckenzie 제공

지난주 출간된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에 부는 사회주의 바람을 소개한 책이다. 20대 청년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 분노 등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 원인으로 불평등의 심화와 기성 정치의 실패가 지목되는 것도 같다. 그런데 미국의 20대는 좌경화하고 한국의 20대는 우경화한다. 왜 그럴까. 미디어문화 연구자 김내훈(30)이 쓴 ‘급진의 20대’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20대, 미국은 좌경화 한국은 우경화


김내훈은 이 책에서 ‘정치적 상상력’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한국 20대의 특징 중 하나로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을 꼽는다. 그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이념의 평균적 지형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진보 정치가 신자유주의에 포획되며 우경화했기 때문이다. 샹탈 무페는 오늘날 진보와 보수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했고, 낸시 프레이저는 현재 이념 지형을 ‘진보적 신자유주의’와 ‘반동적 신자유주의’로 표현했다.

한국도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 김대중정부 이후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세 번째 집권했지만 신자유주의 흐름은 가속화됐고 좌파 정치는 더 소수화됐다. 저자는 지금 보통 한국인의 이념은 ‘자유주의-권위적 보수주의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이런 이념 지형이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지금의 청년들에겐 생래적인 환경이다. 현재의 20대는 신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정치적 상상력을 넓힐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정치적 상상을 자극하는 모델이 한국엔 없었다. 미국에는 버니 샌더스라는 걸출한 좌파 정치인이 있었고 민주사회주의라는 진보 정치그룹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양당 정치에 좌절한 청년들이 향할 곳이 있었다.

한국의 20대 역시 이 사회가 이 상태로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양대 정당 중 어디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이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응징 투표’뿐이며,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혐오뿐이다.

포퓰리즘 양상을 보이는 20대 현상

이런 분석은 현재 20대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왜 이토록 견고한지 설명해준다. 20대가 구축한 반정부 전선은 보수화의 증거가 아니라 현 사회에 대한 분노이고 응징의 열망이다. 김내훈은 “극우적 선동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내훈은 20대는 보수화된 게 아니라 과격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20대 현상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포퓰리즘 현상으로 조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포퓰리즘 계기’를 살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병폐로 나타나는 불평등과 양극화, 공공성의 약화, 삶과 일자리의 불안정, 자유주의 정치의 무능과 위선 등을 동력으로 한다.

포퓰리즘을 예외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에 내재하면서 이따금 그것의 고장을 알리는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그림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김내훈은 현 체제가 초래한 우울과 불안, 그리고 현 사회에 대한 응징의 욕망으로 단단하게 결집했다는 점에서 20대 현상이 포퓰리즘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계층 하강에 대한 우려는 청년세대가 겪는 불안의 씨앗이다. 취업난과 고용불안은 그 불안을 자극한다. 그들에게 정치는 나를 대변해주지 못할뿐더러 위선적이다. “정치인은 모두 거기서 거기”이며 “양당은 노답”이라는 정서를 공유한다. 여기에 미디어가 개입해 분노와 혐오를 부추긴다.

지금 20대는 ‘공정하지 않다’와 ‘위선적이다’라는 깃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반정부 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 정치를 욕하면서도 정작 정치를 제대로 들여다보진 않는다는 점 등은 그것이 텅 빈 구호임을 드러낸다. 김내훈에 따르면, 공정과 반위선은 표피에 불과하다. “그것을 들어내면 몰락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한 몸부림, 떨림들이 있다”는 것이다. 혐오 역시 우울과 불안의 원인을 의인화된 특정 집단에서 찾으려는 몸부림이자 그릇된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김내훈에 따르면, 지금 이대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20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한 탓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떠한 변화를 지향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들이 새로운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력에서 새로움이란 곧 정권교체를 뜻한다.

급진화의 가능성도 있다

20대의 포퓰리즘은 현 정부에 대한 반대로 결집되며 보수정치와 공명하고 있다. 20대 포퓰리즘의 방향이 이렇게 결정된 데는 보수적 이념 지형, 급진적 대안의 부재 등이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문화 탓도 있다. 주목과 관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며 정치담론을 왜곡시키는 사람들을 다룬 ‘프로보커터’라는 책을 내기도 한 김내훈은 미디어문화 연구자로서 그 영향을 세밀히 묘사한다.

20대는 대체로 정치에 무관심하며 짧고 자극적인 카드뉴스 방식의 콘텐츠를 통해 주로 시사를 접한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클릭하며 기사는 안 보고 댓글을 읽는다. 온라인 문화를 지배하는 단순화와 희화화는 정치를 쉽게 욕하고 경멸하게 만든다. 소셜미디어에서 중국인 비하가 유행하고, 이것이 문재인 정권에 붙은 ‘친중 외교’ 딱지와 맞물려 반정부의 알리바이가 되는 식이다.

“커뮤니티에서 발원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가는 괴담과 가짜뉴스, 혐오 콘텐츠, 유머로 둔갑한 증오의 메시지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렉카 계정들이 퍼뜨리는 이러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분노 어린 댓글을 마주할수록, 천천히 그 분노를 자신의 것으로 학습하게 된다.”

책은 20대 현상이 표출하는 분노와 혐오가 실은 만성적 우울과 불안에서 비롯된 떨림이고 몸부림이라고 말한다. 위태롭고 과격해진 마음들이 겉만 그럴듯한 공정이나 반위선이라는 기표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김내훈은 20대의 과격화가 급진화로 전환될 가능성도 검토한다. 20대의 포퓰리즘 속에는 불평등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파적 개혁에는 반대한다면서도 기본소득에는 공감한다. 저자는 “저 몸부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새로운 급진 정치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