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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중산층이 뿔났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한국 사회는 양분돼 있다. 언젠가부터 내 편 아니면 적이다. 중간 지대가 잘 안 보인다는 말이 수시로 들린다. 얼마 전 함께 등산했던 전직 고위 관료는 산행길 대화 과정에서 이 문제의 원인을 ‘정치’와 ‘중간’으로 꼽았다. 사회를 양분하는 진영 논리로 점철된 정치를 합리적 판단과 투표로 저지해야 할 중도가 줄어들면서 길을 잃었다는 논리다.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중산층인 이들이 감소하면서 양극화를 막아설 방화벽이 얇아졌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중산층이 줄어들었다는 인식만큼은 짚어 볼 만하다.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우리 주변 대다수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산층이 줄어들었다면 내 가족 또는 친우의 형편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 된다. 코로나19로 삭막해진 사회의 내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곪아 가고 있는 거 아닐까. 갑자기 우려가 커진다.

다행히도 평균적인 인식만 보면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를 보면 월 200만원 이상 버는 이들 10명 중 6명(58.8%)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간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그리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기에 접어들었던 2011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1%는 자신을 중간이라고 평가했다. 경계가 분명한 소득을 기준으로 삼지 않은 조사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나는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건재하다는 점은 확인 가능하다.

다만 이 통계 하나만 가지고는 우려가 가시질 않는다. 비슷한 다른 통계와 온도차가 있어서다. 사회조사의 한 부분인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인식’을 묻는 말을 보면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만 해도 응답자의 41.1%가 자신은 중간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2020년 조사에서는 응답 비율이 36.0%로 5.1% 포인트 줄었다.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자존감’을 지닌 이들이 소폭이지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이 소외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가계부채 급증이다. 통계청이 2년마다 한 번씩 조사하는 가구당 부채 추이 설문 결과를 보면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부채가 늘었다’는 응답이 2년 전 조사 때보다 부쩍 늘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응답률이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는 한데, 부채 감소라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난제다. 정부조차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과 관련해 신통방통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금리는 계속 상승하면서 국민 전체의 이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3.81~5.57%까지 치솟으며 6%대를 목전에 둔 상태다. 늘어나는 빚과 이자 부담은 중산층을 저소득층으로 끌어내리는 기폭제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부동산 보유세 등 세금 부담은 폭탄이 터지는 시점을 더 앞당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4년여간 일관되게 미온적이었던 중산층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문재인정부 들어 중산층 대책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경제 정책 총괄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대표적인 중산층 대책으로 꼽는 정책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혜택 확대와 반값 등록금 확대, 청년 자산형성 지원책 정도다. 여기에 호텔 등을 개조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내용이 담긴 ‘11·19 부동산 대책’도 중산층 주거 대책 중 하나로 평가했다. 부동산 실정으로 ‘영끌족’을 양산하고 가계부채를 큰 폭으로 늘린 입장에서는 참 민망할 것도 같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 각종 대책을 다시 한번 살펴봐도 이 대책들이 한국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 거라는 확신이 들지를 않는다.

중산층은 자신의 경제적 위치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데 정부는 만족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전직 고위 관료가 말한 중산층이 감소한다는 인식은 이런 상황이 만들어 낸 현상 아닐까.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역할은 다음 정부가 맡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이 발표하는 공약에서도 중산층을 확대할 수 있을 법한 정책은 잘 안 보인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산층이 뿔나 있는 것. 그게 민심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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