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고 간 천사… 23년 전엔 신장, 사후엔 시신 기증

70세 박옥순씨 숭고한 생명 나눔
47세 때 생면부지 여인 신장 떼줘
언니와 함께 대가 없는 ‘순수 기증’
위암 악화되자 시신 기증도 결심

암 투병 끝에 지난 3일 숨진 박옥순(70·왼쪽)씨가 2009년 언니 박옥남씨와 함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의 날 행사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23년 전 가족도, 지인도 아닌 생면부지 환자에게 신장 한쪽을 기증했던 70대 여성이 최근 숨을 거두면서도 시신을 기증하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암 투병 끝에 지난 3일 숨진 박옥순(70)씨가 경희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했다고 20일 밝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까지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본인의 시신을 써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 모두 박씨의 뜻을 존중해 기증에 동의했다.

박씨는 47세였던 1999년 얼굴도 모르던 20대 여성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생면부지 타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신장을 나눈 ‘순수 신장기증인’은 국내에서 극히 드물다. 2018년 전체 신장기증 2407건 중 4건, 2019년 전체 2687건 중 1건뿐이다.

박씨가 신장기증을 결심했던 이유는 역시 전혀 모르는 남에게 먼저 신장을 기증한 언니 박옥남(76)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언니를 봐라. 신장 하나를 기증하고도 얼마나 건강하느냐”며 만류하는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자매가 함께 순수 신장기증인이 된 사례는 국내에서는 박씨 자매가 처음이다. 박씨는 생전 주변에 “신장을 떼어낸 자리에 다시 신장이 자란다면 몇 번이라도 더 나눠주고 심정”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신장 기증 후에도 20년간 별다른 질환 없이 생활했으나 2019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암은 폐까지 전이됐다. 건강이 악화되자 박씨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임종을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시신 기증의 뜻도 함께 전했다. 언니 박씨는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이어가는 중에도 끝까지 나누는 삶을 살고자 했던 동생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동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와 나머지 두 동생도 모두 시신을 기증할 마음을 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운동본부 관계자는 전했다.

박진탁 운동본부 이사장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생명 나눔의 거룩한 의지를 보여주신 고인의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이 이어져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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