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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죽어가는 김영란법

고승욱 논설위원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은 2016년 9월 시행됐다. 2012년 8월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발의한 지 4년 만의 결실이었다.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빠졌고, 대상자를 무리하게 넓히고 예외 조항을 곳곳에 삽입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최소한 공직 사회, 언론계, 교육계에 만연한 그릇된 접대 문화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사람이 김영란법을 ‘3만-5만-10만원법’으로 알고 있다. 식사비 3만원, 축의금 5만원, 선물 10만원은 허용되는 법이라는 뜻이다. 맞는 말이지만 정확하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상당한 오해이기도 하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배제된 현행 김영란법의 핵심 조항은 돈이나 물건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8조다. 이 조항은 ‘공직자는 직무 관련성, 대가성과 관계없이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를 위한 식사비, 축의금, 선물을 예외로 하고 한도는 국무회의에서 바꿀 수 있는 시행령에 담기로 했다. 그 시행령에 기재된 내용이 3만-5만-10만원이다. 원활한 직무수행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예외만 잔뜩 부각됐으니 시행 6년이 된 지금 왜 법을 만들었는지는 관심 밖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변명 속에 한도는 계속 늘고, 김영란법은 점점 사법(死法)을 향한다.

지난 5일 시행령이 바뀌어 농수산물은 20만원까지 선물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샤인머스켓이 들어간 최고급 과일 세트, 20만원짜리 한우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 설을 앞두고 사과·배 값은 떨어지는데 한 송이에 몇만원인 포도 값이 껑충 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만원인 식사비 한도를 5만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식산업 숨통을 틔운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공직자가 1인분에 5만원짜리 비싼 밥을 공짜로 얻어먹어 외식산업이 살아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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