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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북한의 소원 성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이 그토록 바라던 핵보유국 인정에 거의 다다랐다. 최대 수십 기에 머무를 대륙간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수백 기 이상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중단거리 전술핵 미사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양한 형태로 투발되는 미사일이므로 그만큼 미국 반격에 대한 생존성도 높였다. 결국 북한 핵을 인정한 핵 군축이 현실적 대안으로 이미 미국 내에서 활발히 제안된다. 한국은 사실상 인정된 북한 핵을 안고 살날이 멀지 않았다.

2022년 초부터 몰아치는 북한 미사일 도발은 핵보유국 인정을 확정하는 단계다. 북한은 지난 11일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을 ‘최종시험발사’로 규정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15일 발사한 KN-23과 17일 쏜 KN-24다. 북한은 전력화 과정 중에 시행되는 ‘검열사격훈련’과 ‘검수사격훈련’을 발사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 미사일은 이중 용도로서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 모두를 탑재할 수 있으므로 전장 환경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든다.

1970년대 유럽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소련이 SS-20 전술핵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고, 미국은 BGM-109 순항미사일과 MGM-31B 탄도미사일로 대응했다. 이들 미사일은 사거리 500∼5500㎞ 중단거리 미사일로 언제든지 실전에 사용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 오인과 불신, 오판에 따라 일방이 미사일을 쏘게 되면 전면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컸다. 미국과 소련도 이런 우려를 인식했기에 1987년 ‘중거리 핵전력(INF) 폐기 조약’을 체결했다. 미·소는 전략핵 균형을 이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중단거리 전술핵이 쉽게 초래할 수 있는 핵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군비 제한에 합의했다.

북한은 이런 역사적 사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 중이다. 전술핵 위협을 무기로 미국을 압박해 핵 군축 협상을 본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전술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전략핵을 협상용으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미국 내에서는 2017년 이래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 군축을 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논의된다. 영향력이 큰 국제정치학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미국이 소련과 중국 등에 한 것과 같이 북한에 대해서도 억제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면서 북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했다. 대북 강경파로 유명한 미국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와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센터장도 북한과 제한된 핵 군축을 제안한다. 이들 주장은 북한 핵 능력 전반이 아니라 투발 수단, 특히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중지에 맞춰져 있다. 미 본토가 안전하고 북한이 핵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으면 나머지 핵 능력은 천천히 줄여나간다는 복안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되뇌는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논리다. 북한도 동아시아 역내를 사정권으로 하는 확실한 전술핵 능력을 보유하는 대신 정치적 비용이 크고 기술적으로도 완성이 불확실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협상용으로 쓸 가능성이 있다. 생존성을 높인 북한의 전술핵과 미국의 전략핵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역사가 쓰일 수 있다. 한국은 여기에 볼모로 잡힌다.

북한이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받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북한의 전술핵은 한국을 목표로 한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는 제도화된 체제가 아닌 미국의 공약이다. 한국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지형이 바뀌고 있지만, 대선전에서 이와 관련된 심도 있는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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