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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의식 (13) 욕설과 몸 싸움장 된 교회… 주일에 설교 가기도 두려워

부임 전 장로 불법 선거로부터 시작
관리집사들 해고문제로 갈등 더 커져
갖가지 협박과 폭언으로 위협까지…

김의식(앞줄 왼쪽 다섯 번째) 목사가 2000년 서울 화곡동교회 목사 위임예배에서 당회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0년 6월 11일 서울 화곡동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부임하기 전부터 한 안수집사님이 화곡동교회에 오면 다치니까 오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10여 차례씩 보내왔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의식(義植)이라는 이름 그대로 누가 불의하게 압력을 가하면 더욱 드세게 일어서는 의식(意識)이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시끄럽기에 이렇게 오지 말라고 압력을 가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부임했다.

교회에 막상 와서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노량진교회에서 목회 훈련을 받을 때는 교회 안에 사랑하는 형제들만 있는 것 같았다.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때는 교회 안에 원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당시 화곡동교회는 마귀가 득실거리는 복마전 같았다. 화곡동교회는 김학만 원로목사님이 출석 교인이 200여명 되던 1975년 부임하신 뒤 24년 2개월 동안 2000명으로 부흥됐다. 그런데 김 원로목사님은 은퇴를 2년 앞두고 장로 불법 선거 시비에 휘말리셨다. 총회 재판국의 판결대로 보면 문제 삼을 것이 없었지만 시비를 걸면 문젯거리가 됐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부임하기 한 주 전에 문제가 있던 관리집사들을 해고한 것이었다. 이 일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나는 서로 간에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평한 교회를 회복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교회가 평안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관리집사들은 당회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이후 기독노조를 설립하며 교회와 대립했다.

이런 교회 분쟁이 6년 7개월 동안 계속됐다. 당회나 제직회나 공동의회가 있는 주일은 교회에 나가기가 싫었다. 심한 욕설과 몸싸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가 주일에 교회 가기가 싫을 정도라면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어떤 교인들은 “X새끼 같으니라고” “네 명에 죽을 것 같냐” 등 갖가지 폭언으로 위협했다. 심지어 어떤 교인은 새벽 1시든, 2시든 상관없이 사택에 전화해서 “아파트 문에 다이너마이트 폭파 장치를 해놓았으니 나올 때 콩가루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또 당시 화곡동교회에는 고소의 달인(?)들이 많았다. 자신들의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고 계속 고소를 해댔다. 그래서 매주 경찰과 검찰, 법원, 노회 재판국, 총회 재판국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됐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십자가를 붙잡고 믿고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었다. 나는 주님만 바라보며 치유 목회를 계속해나갔다.

부임 후 3년쯤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왜 우리 원로목사님이 목회를 이렇게 마무리하셔서 나를 힘들게 하냐고 불평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성령님께서 깨우쳐 주셨다. “네가 평생 목회해서 오늘 같은 화곡동교회를 이룰 수 있는 줄 아느냐. 네가 못 이룬다면 이뤄 놓은 교회에 와서 설거지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날 이후부터는 원로목사님에 대한 불만이 싹 사라졌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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