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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출 대신 조종간… 아들엔 당연했을 결정”

故심정민 소령 가족 인터뷰
“노후기종 조종사들 불안… 정민이 사고가 변화 계기되길”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전투기 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이 중위 시절 자신의 주기종 F-5E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 모습. 유족 제공

아들에겐 10초가량 시간이 있었다. 10초는 조종사가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

그러나 아들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비행자동 기록 장치엔 아들이 조종간을 붙잡고 가쁜 호흡을 하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생사를 가른 10초. 아들은 관제탑과 교신에서 두 차례 ‘이젝트(Eject·탈출)’를 외쳤다.

하지만 민가 쪽으로 전투기가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야산 쪽으로 기수를 돌리다가 비상탈출 시기를 놓친 것으로 공군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F-5E 전투기 조종사 고(故) 심정민(29) 소령. 그는 임무를 위해 경기 수원기지를 이륙하던 중 기체 고장으로 순직했다.

국민일보는 23일 심 소령의 부친 심길태(66)씨, 큰누나 정희(39)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부친 심씨는 “정민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을 했을지, 그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심씨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늘 바르게 커왔던 아들이라 어쩌면 당연했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심씨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천국에서 정민이와 다 같이 만날 수 있다는 소망으로 가족들도 씩씩하게 살고자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전했다.

심 소령은 부모에게 늘 대견한 아들이었다. 부친 심씨는 “항상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던 의젓한 늦둥이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아들의 굳은 마음은 조종간을 놓지 않는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심씨는 2021년 3월 제69기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당시 심 소령이 F-5E 기종으로 대표 비행하는 모습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저장하고 있다. 심씨는 “가족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심 소령은 2012년 공사 64기로 입학했지만, 다섯 기수 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대표 비행을 한 것이다.

큰누나 정희씨는 “(심 소령이) 미리 말을 안 해주고, 대표 비행 전날에야 가족에게 알려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며 “정민이는 ‘어쩌다가 비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비행 모습을 방송으로 봤을 때 무척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희씨는 “지난해 호국훈련 유공으로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도 최근 사고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학창시절부터 각종 상장을 많이 받아왔는데, 자랑 한번 하지 않고 가방 속에 넣어뒀다가 가족이 발견하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부친 심씨는 심 소령이 공사에 입학한 뒤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 아버지, 전 이제 나라의 아들이에요.”

정희씨는 “정민이가 지난해 초등학생 조카의 ‘직업 인터뷰’ 숙제를 해주면서 ‘꿈꾸던 목표를 이루고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 너무 보람차고 행복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심씨는 “이젠 정민이가 우리 가족만의 아들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많은 분의 마음속에 기억됐으면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 잊히겠지만 명예로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故) 심정민 소령이 2017년 12월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고등비행교육과정 수료식을 마친 뒤 꽃다발을 들고 부모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부친 심길태씨는 “늘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던 의젓한 늦둥이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유족 제공

유족은 심 소령과의 추억을 하나둘 모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희씨는 “코로나19로 자주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 제주도에서 가족 모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그때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렇게라도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참 감사하고 소중한 추억”이라고 전했다.

심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아들이라 이곳에서의 짧은 삶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매일 아침 가족 단톡방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이야기하며 지냈던 시간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말했다.

유족은 군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특히 심 소령의 주기종이었던 F-5E는 1970년대 도입돼 노후 기종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

유족은 “해당 기종을 주기종으로 하는 조종사들과 그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민이의 사고는 우리 가족에게는 평생 가슴에 남을 슬픈 일이지만, 이 사고가 변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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