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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석 칼럼] 애국적 백만장자들의 고백


전 세계 슈퍼 리치 102명으로 구성된 단체,
WEF에 참석한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들 향해 세금 더 내게 해달라고 청원
코로나19 팬데믹 1년반 동안 세계 인구 99% 소득 줄었지만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급증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 더 커져
국내서도 서민들 호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부자들 재산은 늘어
상대적 박탈감이 한계치… 부자 증세에 대해 고민할 때

며칠 전 외신에서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한국인에겐 다소 의아해서 더욱 그랬다. 전 세계 부자들, 소위 ‘슈퍼 리치’로 구성된 한 단체가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해달라고 청원했다는 소식이다.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지난 17일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화상으로 개최한 ‘다보스 어젠다 2022’에서 공개서한을 통해 참석한 전 세계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밝혔다. “전 세계가 지난 2년간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이 기간 우리는 우리의 재산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금을 공정하게 내고 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우리 같은 부자들에게 당장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 단체는 월트 디즈니 가문의 상속자 애비게일 디즈니와 벤처 투자가 닉 하나우어 등 102명으로 구성돼 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 세계 인구 99%의 소득은 줄었다. 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 등 10대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억만장자들의 전체 재산은 8조6000억 달러에서 13조8000억 달러로 불과 1년반 동안 5조 달러 이상 늘어났다. 이는 이전 14년 동안 늘어난 것보다 많았다. 애국적 백만장자들이 옥스팜 등 비영리 단체들과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산 500만 달러(59억6000여만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을 대상으로 부유세를 부과하면 전 세계 23억명을 가난에서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국내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개인 상위 500명의 주식 가치는 연초 146조1661억원에서 연말 184조6408억원으로 26% 증가했다. 보유주식 가치가 1000억원 이상 증가한 사람은 56명이며, 1조원 이상 불어난 사람도 13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부자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보통 사람들의 재산은 오히려 대부분 줄어들었다. 부자들은 요즘 가장 안전한 자신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코로나 방역이 최상으로 갖춰진 일류 호텔 고급 식당 등을 찾아 나선다. 반면 지옥철 등으로 출퇴근하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도 늘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호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 상실감에 빠진다.

최근 한 지인은 기관투자가를 통해 공모 청약 광풍이 불었던 LG에너지솔루션에 수십억원을 맡겨 700여주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서민들은 영끌을 해도 단 몇 주를 받는 데 그쳤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손쉽게 더 많은 재산 증식에 나선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돈 없는 사람들은 금융권의 가계대출 옥죄기에 은행에서 융자도 받기 쉽지 않아 내 집 마련에 쩔쩔매지만, 돈 많은 사람은 수십억 현금으로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서민들의 박탈감은 한계치를 넘어설 정도다. 재벌 대기업 등은 지금도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혁신기업으로 불렸던 카카오 임직원들은 스톡옵션 ‘먹튀’ 논란 등 서민들의 가슴만 후벼팠다. 배가 아픈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코로나에 가장 직격탄을 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내몰리고 있다. 서민들은 하루하루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듯 힘겹게 살아간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50조원, 100조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로만 외칠 뿐 정작 재정 적자 등 예산 부족 타령뿐이다. 서민이 무너지면 나라가 흔들린다. 더 늦기 전에 정치권, 특히 대선 주자들은 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다수의 정부가 최근 부유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우리도 부자 증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오종석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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