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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맛집 찾기 멀고 먼 길

박두호 전 언론인


그날은 설렁탕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 온 지 6개월쯤, 그동안 동네에서 먹을 수 있는 국물 음식은 돼지국밥밖에 없었다. 제주 시내에 나간 김에 시청 근처에 차를 세웠다. 점심시간이면 공무원들이 몰려나와 밥을 먹는 곳이기에 오래된 설렁탕집 한 곳쯤은 꼭 있다. 금세 한 곳이 나타났다. 간판이 오래됐다. 이름도 그럴듯하다. ‘복지회관’ 이런 이름을 붙이던 시절이 있었지.

내부 구조는 딱 설렁탕집인데 벽에 최근 카페에서 쓰는 싸구려 무늬 합판을 여기저기 장식이라고 붙였다. 잘하려고 한 건데 내 눈엔 아니다. 설렁탕 국물은 맑았고 냄새가 좋았다. 눈으로 보기에 그동안 맛있게 먹던 그 설렁탕 느낌이다. 소금 간을 한 뒤 국물 맛을 봤다. 잡맛이 제거된 순수한 고기육수의 맛. 좋은 설렁탕집 한 곳 찾은 것 같다. 그 후 5년을 이용했지만 지난해 문을 닫았다.

제주도에서 냉면 잘하는 집 찾기는 제일 어려웠다. 내가 살던 곳은 갈비가 유명한 수원이라 후식으로 먹는 냉면이 발달했다. 제주도는 돼지고기가 주류라 냉면의 필수인 쇠고기 육수가 발달하지 않았다. 중산간로를 가던 중 와흘에서 메밀국수 간판이 눈에 띄었다. 건물과 간판이 새것이어서 머뭇거렸다. 주방에는 국수를 내리는 기계가 있고 솥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고명과 양념을 풀기 전에 그릇을 들어 얼음 섞인 국물을 마셨다. 나와 아내는 깜짝 놀라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 맛이다. 면도 잘 삶아졌고 메밀과 밀가루 비율도 적당해 끊김이 좋았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좋은 냉면집을 찾았다.

6년 전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 조카의 고등학생 아들이 고사리해장국집을 소개해 드린다고 약도를 그려줬다. 상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외할아버지가 데리고 가던 곳이란다. 그 할아버지는 제주도에서 공직생활을 오래 했다. 제주시 신산공원 부근의 식당은 작은 규모로 고사리해장국과 녹두 빈대떡을 팔았다. 제주도 고사리가 그렇게 맛있는 줄 나는 제주도에 이주하고 일찌감치 알아버렸다. 4년쯤 지나 ‘상중’이라는 표지가 걸리고 그 뒤 문을 닫았다. 정말 좋은 식당 하나를 잃었다.

제주시 탑동 칠성로는 제주시가 패션특화거리로 육성하고 있다. 그곳 끄트머리, 간판은 시 예산으로 깔끔하게 바뀌었지만 내부는 시골 국밥집 그대로 해장국집이 있었다. 소머리국밥인데 국물을 잘 내렸다. 당시 영업 19년째였다는데 내공이 묻어났다. 그 뒤 나는 그 해장국집에 들어가고 아내는 그 옆 퓨전 일식집에 들어가 연어덮밥을 먹는다. 해장국집은 지금은 제주소방서 맞은편 이도동으로 옮겨 성황이다. 인터넷 제주도 맛집 검색에서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맛집 후기를 들여다보면 많은 가짜뉴스 가운데 참뉴스는 42%를 밑돈다. 여기서 ‘42’는 중·고교 절친 유희만이 뭔가 우길 때 구체적 숫자면 대면 신뢰성이 높아질 거라고 늘 똑같이 갖다 붙이던 근거 없는 수치를 이제 와 나도 그에 대한 오마주로 한 번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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