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희망의 노래 작을지라도 죽음과 불멸을 잇는 연결부호 되리라

죽음 넘은 영생의 길 희망의 詩 남겨 인도한 에밀리 디킨슨


그는 ‘조용한 열정’의 소유자였다. 삶의 겉모습은 고요했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애머스트의 수녀’ ‘은둔자’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부 세계와 거의 담을 쌓고 생활했다. 그러나 내면은 강렬하고 뜨거웠다. 그의 영혼은 신에 대한 저항과 순응, 용서와 화해를 위해 끊임없이 탐색했다. 그가 평생 쓴 시는 1775편. 7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후에 8권의 시집으로 출판됐다. 제목이 없는 무제 시들은 일련번호가 붙어 있거나 시의 첫 줄이 제목이 됐다. 그는 고독 속에서 자신의 시대보다 반세기 앞선 시를 썼고, 20세기에 와서야 제대로 평가받았다.


그는 바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년·사진)이다. 디킨슨은 친밀하고 익숙한 언어로 사랑, 죽음, 자연 등을 노래했다. 그가 쓴 시 중 500편 이상이 죽음과 불멸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의 시엔 죽음 너머 그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내재했다. 특히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죽음의 본질을 탐색하고 ‘죽음과 불멸’이란 심오한 주제에 천착했다. 디킨슨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과 영생을 이어주는 ‘연결부호’라고 생각했다.

영적 저수지, 애머스트

그가 죽음과 불멸에 대한 주제의식을 갖게 된 배경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영향이 컸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의 독실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에 조너선 에드워드가 이끌었던 ‘영적 대각성 운동’의 강렬한 영향이 이 지역을 휩쓸었다. 당시 애머스트는 청교도주의 신봉의 중심지였다. 디킨슨은 가정과 학교에서 엄격한 청교도 교육을 받았지만,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 신학대학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그만둔다.

그는 한 인간의 신앙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고 그의 방식으로 신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당대 청교도주의가 내세를 위해 현세의 삶을 억압했다면 그는 신이 창조한 현세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는 형식적이고 억압하는 신앙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하나님과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그는 이십 대 중반, 영혼의 지축이 흔들리는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을 때 장로교 목사 찰스 워즈워스를 만난다. 찰스 워즈워스의 문학적인 설교는 디킨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워즈워스의 칼뱅주의적 전통주의는 디킨슨의 사색에 밑거름이 됐고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워즈워스 목사는 기혼자였고 그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디킨슨은 그가 시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을 자기 그릇 만큼밖에’ 담지 못했다. 그는 실연을 겪고 난 뒤 30세 이후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디킨슨이 외롭게 독신으로 은둔생활 한 것을 보상받지 못한 사랑 때문이란 시선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좌절은 차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돼 작품들과 영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그의 시어들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상처받아 아픈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대표작 ‘내가 만일’ 에서 그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내가 만일/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내가 만일/한 생명의 고통을 덜 주거나/한 괴로움을 달래거나/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를 도와서/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내 삶은 정녕 헛되지 않으리.” 디킨슨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언어를 전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정녕 그 인생은 헛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길에서 홀로 뒹구는 저 작은 돌’이라는 시에서 그는 돌에게 갈색 옷을 입혀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전제 아래, 불순종하고 타락한 사람들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홀로 살아가며 소박하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드리는 작은 돌의 행복을 노래했다. 남이 볼 때 하찮아 보이는 돌도 그 본분과 의무를 다하면서 신의 뜻을 이뤄간다는 인생의 행복을 이야기한 것이다. “길에서 홀로 뒹구는/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한가/세상 출세 신경 안 쓰고/긴급사태도 두려워하지 않네/천연의 갈색 옷은/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봐/태양처럼 독립적으로/혼자 지내고 홀로 빛을 내며/격식 차리지 않고 소박하게/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또 디킨슨은 희망은 우리의 영혼 속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다고 말한다. “희망은 한 마리 새/영혼 위에 걸터앉아/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그칠 줄을 모른다/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아무리 심한 폭풍도/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허나 아무리 절박해도 그건 내게/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희망은 한 마리 새’ )

희망은 작은 새의 소리처럼 금방 사라져버릴 것처럼 보이지만, 영혼 위에 내려앉은 새처럼 지치지 않고 노래한다. 그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죽음, 영원의 출발점

아름다운 언어로 자연을 노래했던 디킨슨에게 죽음은 살아있는 시간의 종점이며 동시에 영원한 시간으로 넘어가는 출발점이었다. 따라서 무덤은 죽음과 불멸 사이의 중간 지점이다. 디킨슨은 죽음이 삶의 종말인지, 새 삶의 출발을 의미하는지 탐색했다. 죽음이 목적지가 아니었다. 목적지는 영원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시 ‘나 죽어서 웅웅대는 한 마리 파리 소리를 들었네’에서 죽음과 죽음 후에 주어질 영원 사이의 순간을 폭풍전야의 고요한 상태로 표현했다. 화자가 죽어 영원으로 들어가기 전 최후의 감각으로 본 것이 천사가 아니라 파리 한 마리. 지상의 창문이 희미해지면서 비로소 죽음에 이른다. 그는 한 마리 파리를 대상으로 삶과 죽음과 영원을 하나의 연속된 선 위에 올려놓는다. 삶은 죽음과 연결되고 죽음은 불멸과 결합해 무시간적인 영혼을 지향한다. “나 죽어서 웅웅대는 한 마리 파리 소리를 들었네/방 안에는 고요/마치 끓어 대는 폭풍 사이/허공의 고요와도 같이…”)


비록 그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천국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신앙이 있다면 영원한 나라에 갈 것이라는 믿음이 시에서 나타난다.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친절하게도 죽음이 날 위해 멈추었네/수레는 실었네, 우리 자신은 물론/또 영원을…”(‘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중)

시인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으니 죽음이 그를 위해 친절하게 멈추었다고 말한다. 이는 흘러가는 시간의 정지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불멸을 향한 출발점을 의미한다. 현재의 삶이 죽음을 거쳐 불멸로 이어진다고 인식했다.

디킨슨은 평생 신의 존재를 믿기도 하지만 반대로 의심하기도 했다. 그가 신에 대해 가졌던 마음은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면이 많았다. 신에 대한 본성을 탐구하면서 ‘냉혹한 신’과 ‘사랑의 신’이라는 모순적인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고뇌했다. 그러나 신의 표상인 자연이 모든 존재에 대해 공평하게 사랑으로 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고통에 냉담한 신, 보이지 않는 신을 자연 속에서 발견함으로 그는 오랜 방황 끝에 하나님과의 화해를 요청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