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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현장 민원 해결… 설에도 쉼없는 ‘코로나 어벤져스’

영등포 재난안전본부 사람들
여성 8명 등 10명 교대 연중무휴
오미크론 번지며 민원 전화 급증

지난 21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구청 6층 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콜센터에서 상담사들이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응대하고 있다. 사무실 한 구석에 놓인 안내판에 구내 선별진료소·보건소 등의 위치와 운영 시간, 코로나19 담당부서들 내선 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최현규 기자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청 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콜센터로 걸려온 전화를 김은숙(51)씨가 받았다. 상대편 남성은 다짜고짜 “저 왜 이송 안 해요?”라고 물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김씨는 익숙한 상황인 듯 능숙하게 이송 전 자택 대기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지역 특성상 중국동포들과 중국인들의 문의가 많다”며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마음은 급하다 보니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묻는다. 사전 배경 설명이 긴 한국 사람들과 비교된다”고 웃었다.

팀에서 중국인 전담 요원으로 일하는 김씨는 과거 가족들과 중국에서 사업을 했다. 중국어가 유창하고 중국인의 문화에도 익숙하다고 했다. 김씨 가족은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고 사업도 어려워지면서 2020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어 능력을 활용하면서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김씨는 민원 콜센터에 지원해 지난해 1월부터 상담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나도 이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코로나19 방역 현장의 ‘문지기’가 됐다. 영등포구청 재난안전대책본부에는 김씨와 같은 중국어 전담 인력 외에 영어와 일본어 능력자도 상주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김씨를 비롯해 여성 8명과 남성 2명이 헤드폰을 쓰거나 전화기를 어깨에 걸친 채 시민들의 민원을 정신없이 받아치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썼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깨를 둥글게 웅크린 채 전화기 너머 코로나19 민원인의 이야기를 듣고 답했다. 상담사들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전화를 건 민원인들의 이름과 민원 사유가 빼곡히 정리돼 나갔다.

주변에서는 이들을 ‘코로나 어벤져스’로 불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시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들을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마블 영화 속 영웅들 집단 ‘어벤져스’에 빗댄 것이다. 이들 상담사들은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 주말과 공휴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조를 짜서 쉬는 날을 정해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팀 자체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돌아간다. 지난해 연말에는 1인당 하루 100통 정도의 전화 응대를 했지만,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쏟아졌던 같은해 7~11월에는 1인당 하루에 300통이 넘는 전화를 받는 날도 있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거센 상황에서 맞는 이번 설 연휴에도 전화 문의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는 지난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확진자가 또 7000명을 넘어선 시점을 기점으로 전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일요일이었는데도 어제 한 사람당 평균 150통의 민원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에 이어 올해 설 연휴에도 근무를 택했다. 코로나19 방역 일선을 지킨다는 책임감도 있다. 그는 “직장인 딸 아이와 군대에 간 아들이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해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와 입사 동기인 최민애(가명·55)씨도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근무를 함께 설 예정이다. 일반 기업을 다니다 5년여의 경력 단절을 거친 후 코로나19 민원 상담사가 된 최씨는 이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민원인들에게 안내를 하기에 앞서 나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의 행동도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집합금지 제한 인원 수 등을 묻는 민원인들에게 ‘6인을 넘는 모임은 자제하라’는 등의 안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 연휴 기간 가족 모임도 스스로 자제해야 하지 않겠냐는 설명이었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상담사들이지만 마구잡이 욕설이나 악성 민원과 마주할 때는 마음 한쪽이 무너지기도 한다. 다짜고짜 욕설부터 뱉는 사람, 사소한 트집을 잡고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 등 하루에도 여러 번 악성 민원인들을 응대하고 있다.

두 상담사는 “처음에는 우리가 왜 여기 앉아서 이런 욕까지 들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면서도 “1년 넘게 경력이 쌓이다 보니 민원인들의 분노가 우리가 아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거나 가족이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은 심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어 쉽게 감정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려 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민원인이 쏟아낸 욕설을 두고 속상할 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을 풀고 있다”며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가족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동료들과 다 털어놓고 얘기를 하고 나면 그나마 악성 민원에 시달렸던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동료들에게 전우애 같은 것을 느낀다”며 웃었다.

민원인들은 힘들게도 하지만 힘을 주기도 한다. 최씨는 “지난 추석 때도 ‘연휴까지 고생하신다.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격려해준 분들 덕분에 다시 힘을 냈다”며 “결국 마음에 남는 건 따스한 말 한마디”라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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