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자영업… “임인년 새해엔 손님 많이 받으세요”

“정부지원 현실화” “신속한 손실보상” 골목경제는 절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으로 어려워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가게 매출이 회복돼 가족이 한 밥상에서 식사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서울 종로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59세 박모씨)

“30년째 한자리에서 성실하게 장사했는데 지난 2년간 모아둔 돈을 다 까먹고 빚만 생겼습니다. 차기 대통령은 나라 경제를 살려 자영업자들에게 숨 쉴 구멍을 마련해줬으면 합니다.”(서울에서 두부전골집을 운영하는 72세 김애심씨)

새해를 맞이하는 자영업자들은 ‘매출 회복’과 ‘정부 지원 현실화’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된 지난 2년간 각종 대출로 저조한 매출을 메꿔온 자영업자들은 올해야말로 벼랑 끝에 섰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보상 대책에 사각지대가 많고 액수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23~25일 자영업자 5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응답자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원한 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 해소’였다.


족발집을 하는 박씨는 “종업원 수가 많아서 또는 매출이 높아서 등 갖가지 이유로 한 푼도 손실보상금을 받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많다”며 “이런 억울한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분이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에서 피부관리숍을 운영하는 전은순(42)씨는 “정부는 카드 매출을 기준으로 손실을 따지는데, 고객들이 코로나 사태 전 경기가 좋을 땐 현금을 많이 썼지만 요새는 카드로 계산을 많이 한다”며 “장사가 잘돼서 카드 매출이 좋아진 게 아닌데 정부는 수치만 보고 손실 정도가 적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대통령은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현실을 아는 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조모(29)씨는 “다수의 정부 지원금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 매출을 비교해 지급 대상이 정해진다”며 “나처럼 코로나 발생 이후에 장사를 시작한 경우는 이전과 비교할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못 받은 지원금이 상당히 많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신모(58)씨도 “매출이 일정 액수보다 적으면 일반사업자가 아닌 간이사업자로 신고하는데, 간이사업자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며 “영세한 사업자들이야말로 더 도움이 필요한데 알아서 죽으라는 것이냐”고 따졌다.

지원금 액수 역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세종에서 고깃집을 하는 이모(50)씨는 “(정부가 주겠다는 방역지원금) 300만원 갖고 뭘 하느냐”며 “한 사람 월급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조용환(49)씨도 “종업원 7~8명을 고용한다는 이유로 부가세를 연간 1000만원씩 내는데, 300만원 받는 게 중요하겠느냐”며 “오른쪽 주머니 털어서 왼쪽 주머니에 넣어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호프집을 하는 이근영(43)씨는 “매달 가게 소독비로만 10만~30만원이 들어가는데, 2년간 방역물품 지원금이 10만원이라니 욕 나올 뻔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한목소리로 신속하고 폭넓은 손실보상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경기석(58)씨는 “정치권에서 여야를 따지지 말고 최대한 빨리 협의해서 50조원 정도는 자영업자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며 “조건 없이 선지급 후정산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저금리 대출 확대나 세금 감면부터 해 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경기 의정부에서 귀금속을 판매하는 한송이(30)씨는 “저금리 대출 한도를 푸는 게 시급하다”며 “국가지원 대출이 모자라서 제2금융권을 알아보고 있다. 사채를 쓴 지인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교육 및 정보 공유를 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액세서리숍을 하는 조씨는 “처음 겪는 재앙 상황에서 판매 실적을 어떻게 하면 덜 까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많이 힘들었다”며 “여성인력 개발센터에서 제공하는 교육이나 컨설팅이 그나마 도움이 됐는데, 이런 멘토링 사업을 체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수영(29)씨는 “정부 지원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정보를 잘 모르면 지원금 신청을 놓치기도 한다”며 “나이가 많은 자영업자들이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 현황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자영업자 지원책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근영씨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얼마를 지원해줄 것인가만 말하지, 구체적인 대상이나 내용은 내놓은 게 없다”고 말했다.


신씨도 여야 후보의 지원책을 “돈 있는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혹평하며 “후보들이 경쟁하듯 손실보상금 50조, 100조원을 던지는데 나에겐 해당하는 게 없는 것 같아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다수의 응답자는 아직 표를 줄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미용실을 하는 정노아(33)씨는 “이번 대선만큼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없었던 적도 없었다”며 “어느 후보가 당선돼도 대한민국 미래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론을 주장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박광복(45)씨는 “이번 정부 때 최저임금이며 물가, 세금 모두 급격히 올라 자영업자에게 너무 힘든 정부였다”며 “야권에 더 마음이 간다”고 했다. 부산에서 옷가게를 하는 박모(60)씨도 “이재명이 미운 게 아니라 민주당이 밉다”고 말했다.

응답자 다수는 ‘그나마 현실적인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는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에서 키즈카페를 운영하는 이은영(59)씨는 “공약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후보라면 ‘가족 리스크’든 소속 정당이든 상관없이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강보현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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