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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사랑, 그 희망에 대하여

요한일서 3장 17~18절


하얀 눈발이 날리는 앞산에 푸른 잎을 품은 소나무가 추워 보입니다. 나무 밑을 오가는 들고양이 역시 잔뜩 움츠리고 총총히 걸어갑니다. 들과 산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또한 코로나19에 추위로, 대선을 앞둔 갈등으로 헛헛한 마음 둘 곳 찾지 못해 힘듭니다.

이렇게 을씨년스러울 때 교회가 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 속에서 길을 잃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형국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해답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는 본문에서 ‘재물’은 원어로 ‘비온’이라 하는데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써의 재물’을 의미합니다. ‘보고도’는 ‘데오레’로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7절에서 요한은 생활 속 구체적 사랑의 예로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제시합니다. 본문 말씀은 생활이 어려운 형제를 지속해서 만나면서도 그의 궁핍함을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중 종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중 55%는 ‘집단이기주의’를 꼽습니다. 오랜 사회봉사 역사가 있으나 긍정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 겁니다. 요한일서 2장 5절에 나오는 ‘참으로’의 결여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원어로 ‘알레또스’라 하는데 ‘겉과 속의 일체’를 말합니다.

과거 개신교의 사랑 행위는 겉과 속이 일치하지 못한 채 우리 목적만 앞세웠습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두울수록 밤하늘의 별은 빛나는 법이고 흙 속의 진주는 눈에 띕니다.

사도 요한이 서신서를 썼을 때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습니다. 열렬한 이시스 신 숭배자로 스스로 신이라 칭하며 그리스도인을 박해했습니다. 기독교의 확장은 주춤해졌고 그사이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에 의해 교회는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 서신서를 썼습니다.

지금을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본질을 추구했던 그리스도인은 위기 중 빛을 발했습니다. 이 현실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질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가장 소중한 방법이며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는 길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는 요한일서 3장 18절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 중 ‘행함’은 사랑의 역동적 측면을 나타내고 ‘진실함’은 사랑의 질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행함과 진실함은 사랑을 실천할 때 나타나는 표현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합니다. 말과 혀로만 표현되는 사랑은 의미가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해의 상황에 궁핍해진 형제와 자매를 말로만 위로하는 건 짓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서로 대립하고 증오하는 상태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진 질적인 면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18절에서 사랑의 실천을 선언하면서 이제까지 논해온 것, 즉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의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행위가 없는 신앙으로는 어려운 현실에 처한 땅에 희망을 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에 진심이 결핍됐다면 한 가수가 노래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처럼 열매 없이 끝날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해야만 합니다.

이범황 목사(금성교회)

◇충남 금산군 금성교회는 1905년부터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교회가 있는 금성면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의병장 조헌 등 700명 의사의 유골을 안치한 묘소인 칠백의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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