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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급이 된 시대… ‘82년생 김지영’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책과 길]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한겨레출판, 244쪽, 1만5000원

부동산 광풍 시대 소설가 조남주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중산층의 모습을 그린 신작 ‘서영동 이야기’를 출간했다. ‘82년생 김지영’이 현재 서울 어느 동네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면 이런 일들을 겪고 있지 않을까 보여준다. 이화여대 제공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섰다. 소설 속에서 30대 중반의 주부였던 김지영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거주 가구의 50%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 김지영도 서울 어느 동네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조남주의 신작 소설 ‘서영동 이야기’는 김지영이 사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서영동 동아1차 아파트’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7개의 단편을 연작 형식으로 묶었다.


맨 먼저 나오는 ‘봄날아빠(새싹멤버)’는 이번 소설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봄날아빠는 서영동 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닉네임이다. 주민 커뮤니티는 사실상 부동산 커뮤니티가 된 지 오래다. 봄날아빠는 이 커뮤니티의 열혈 필자다. 서영동 아파트값이 다른 지역보다 저평가됐다고 주장하고 중개업소의 담합을 비판하는가 하면 지하철역 출구를 동아1차 쪽으로 내도록 압력을 넣자고 촉구한다.

“은라 대림은 1억원 이상 올랐는데 서영 동아는 그대로입니다.… 서영동 빼고 서울 다 올랐습니다.… 중개업소 가격 후려치기에 당해 헐값 매도하시는 분들, 정말 답답합니다.”

봄날아빠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파트값이 너무 낮다고 불만을 터트려온 조기축구회 멤버일 수도 있고 서영동 학군이 강남 못지 않다고 주장하는 아이 친구 엄마일 수도 있고 지하철역 출구 내기 운동을 벌이는 입주자대표일 수도 있다. 어쩌면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한숨과 환호를 번갈아 내뱉는 우리 모두일 수도 있다.

‘경고맨’은 경비원 갑질에 대한 이야기다.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는 혐오시설 유치에 반대하는 상황을 그린다. 두 작품은 아파트 문화의 일부가 돼버린 갑질과 혐오가 당신을 향해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서영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를 소유한 유정은 아버지가 퇴직한 후 근처 아파트에 경비원으로 취직하면서 경비원들의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학원장인 경화는 자신의 학원 옆에 들어서는 치매요양원 건축 반대에 나서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만다.

집과 부동산 문제를 젊은이들과 연결시켜 바라보는 작품도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보미’에서 보미는 입주자대표인 아버지를 촬영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누려온 경제적 여유가 아버지의 부동산 투기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는 지방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청년 아영의 주거 현실을 보여준다. 투잡, 쓰리잡을 뛰지만 제대로 된 방 한 칸을 누리지 못한다. 아영이 거처를 못 구해 학원에서 며칠 잠을 잔 걸 알게 된 학원장은 갑자기 자기 집 빈 방을 쓰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몰라, 그냥, 젊은 사람을 이렇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남주는 우리가 아파트에 살면서 흔히 보는 인물들, 종종 겪는 사건들을 갖고 소설을 만들었다. 독자들은 아파트 주민인 자신의 이야기로, 자기 동네의 이야기로 소설을 읽게 된다.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자기의 이야기로 읽었던 것처럼.

책에 수록된 7편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현실적이고 흥미롭다. 인물들이 겹치기도 하는 7편의 단편은 하나로 묶여 집이 ‘급’이 된 이 시대의 풍경화로, 아파트를 키워드로 노골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서울 중산층의 초상화로 완성된다.

조남주가 창조해낸 서영동에는 욕망 이기심 차별 그리고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라고 밝혔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이 소설의 밑바탕에 깔린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경비원 딸 유정이 본 부끄러움, 다큐멘터리 감독 보미가 알게 된 부끄러움, 학원장이 청년 보조교사를 보며 느낀 부끄러움….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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