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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이혼 후 형은 형제복지원에 납치되고 동생은 외갓집으로… 생이별 삼부자, 47년 만에 눈물의 상봉

부흥사회 사회자로 갔던 동생 형제복지원 출신 목회자 도움으로 행방불명 형 소재지 극적으로 찾아

설수철(가운데) 서울 창대교회 목사가 26일 서울역 앞에서 47년 만에 찾은 형 수영씨를 업어주고 있다. 왼쪽은 형제의 극적 상봉을 도운 정광재 다메섹교회 목사. 강민석 선임기자

“아버지의 함자가 어떻게 되십니까.” “설재환입니다.” “동생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수철입니다. 제가 그 아이의 이름을 어찌 잊겠습니까.” “아, 형님… 흐흐흑.”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형 설수영(55)씨와 동생 설수철(54) 목사는 47년 만에 눈물로 재회했다.

형제의 상봉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이야기는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린 국민일보부흥사협의회(국부협·총재 고충진 목사) 신년부흥사회 행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주강사가 정광재 다메섹교회 목사였는데, 고충진 국부협 총재와 사회를 맡은 설 목사가 식당으로 향했다. 정 목사는 1981~84년 부산 형제복지원 생활을 하다가 탈출 후 교도소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목회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설 목사는 늘 하듯 잃어버린 형 얘기부터 꺼냈다. “목사님, 형제복지원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제 형이 47년 전 부산에서 행방불명됐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습니다. 형제복지원 같은 곳에 끌려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요? 내가 좀 알아보겠습니다.”

정 목사는 곧바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유가족모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수영이라고요? 잠시만요. 아, 있습니다. 서울에 삽니다.” “예?” 설 목사가 47년간 그토록 찾았던 형의 생사는 그렇게 5초 만에 확인됐다.

설 목사 가정은 불우했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형은 부산 어머니 집에, 동생은 충남 서천 외갓집에 맡겨졌다. 사실상 방치됐던 형 수영씨는 75년 부산 영도구 봉래동 영도다리를 건너다가 형제복지원 관계자들에게 납치됐다. 8살 소년은 첫날부터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고 형제복지원 건설현장 잡부로 투입돼 3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수영씨는 “소년 16소대에 배정됐는데, 어느 날 탈출했다가 곡괭이로 피 터지게 맞는 친구를 봤다. 그때부터 그곳을 나가겠다는 생각을 접었다”면서 “78년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매실보육원으로 이전했는데 82년 탈출했다. 이후 중국집 배달원, 공사장 잡부 등으로 고된 인생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동생도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부모와 형의 소식이 끊기면서 세상에 홀로 남은 존재가 됐다. 설 목사는 “설을 앞둔 이맘때였던 것 같다. 부산에 있다는 엄마와 형이 너무 보고 싶어 서천에서 부산까지 가겠다며 철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갔다”면서 “그렇게 천안까지 가다가 쓰러져 잠들었고 동상에 걸렸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어 “부산에서 어렵게 찾아낸 부모님은 각자 살림을 차렸고 형은 행방불명 상태였다”면서 “그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형을 찾아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았던 설 목사의 인생을 잡아준 것은 서천 신흥교회였다. 그는 “청소년기 인생의 뿌리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 나를 이끌어 준 곳이 교회”라면서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해 순복음총회신학교와 서울장신대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고 웃었다. 설 목사는 자신의 아픔을 신앙으로 승화하고 2016년부터 노숙인을 위한 급식과 쪽방 사역을 펼치고 있다.

설 목사 형제가 27일 강원도 태백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린 부친을 만나 눈물짓는 모습.

설 목사에게 27일은 뜻깊은 날이었다. 47년 만에 형과 함께 보낸 생일이자 아버지와 형이 재회한 날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부친이 생활하는 강원도 태백의 한 요양원을 찾았다. 치매에 걸린 부친은 초점을 잃은 채 바닥만 응시했다. 수영씨는 “이번 설은 진짜 가족이 모인 첫 번째 설”이라며 애써 눈물을 감췄다.

설 목사는 “어머니는 88년 사고로 사망했다. 주변에선 ‘화장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내가 ‘잃어버린 형이 엄마의 묘소를 찾아올 날이 분명 올 것’이라며 묘지 안장을 고집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형은 눈이 뻘게지더니 오열했다.

삼부자의 상봉을 지켜본 정 목사는 “형제복지원 주범이 악질인 이유는 주변 가족이 절대 찾을 수 없도록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진짜 고아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라면서 “가족들이 찾지 못하도록 해야 돈을 벌 수 있기에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오늘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씁쓸한 설 연휴를 보내는 형제복지원 관련 피해자가 4만명 이상 된다”면서 “자칭 장로라는 사람이 행정기관과 결탁해 수많은 가족의 천륜을 끊어 놨다. 한국교회와 사회는 반드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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