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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중국의 소프트파워와 관시(關係)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룩스는 권력을 아래와 같이 구분했다. 1차원적 권력은 직접적 폭력에서 시작된다. 싸워 이긴 사람은 권력을 잡고, 진 사람은 복종한다. 2차원적 권력은 싸우지 않더라도 지배·피지배 관계가 생겨난다. 싸우기 전에 상대방의 강력함에 압도돼 미리 복종하는 것이다. 3차원적 권력은 상대의 힘이 아니라 제도와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이 세도, 또는 힘이 없어도 법 앞에 모두가 공평해진다. 4차원적 권력은 힘의 수직적 복종이 수평적 관계로 변질된다.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영향력이 너무 좋거나 훌륭해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강압이 아니라 매력, 영향력에 압도되는 것이다. 소프트파워는 룩스가 정의한 4차원적 권력에 가깝다.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가 아니라 매력을 통해,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힘을 말한다.

역사학자와 미래학자들은 20세기가 부국강병, 즉 경성(硬性)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소프트파워가 세계인의 관심을 사로잡는 연성(軟性)국가의 전성시대라고 정의한다. 일찌감치 소프트파워를 장악한 국가들은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과 서구, 일본이었다. 뭔가 말쑥하고, 뭔가 수준 높고, 뭔가 럭셔리해 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인 것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장악한 것이다. 이 매력덩어리는 도시 풍경, 패션, 음식, 음악, 영화, 일상생활 등등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열에 한국도 조금씩 편입되고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 K관광은 누가 크게 홍보하지 않아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그 무엇’이 돼가고 있다. 경제성장과 군사력으로 세계 2강 대열에 우뚝 선 중국이 이 소프트파워의 세계를 탐하지 않을 리 없다. 바로 옆 작은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중국이 가만히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NYT)는 “소프트파워도 ‘동원’하는 중국”이란 제목의 주말판 기사를 실었다. 중국 시진핑정부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 중국 관광명소의 매력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플루언서들에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비행기값과 호텔비는 물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비용을 제공했다고 한다. 평균을 내보니 1인당 무려 5만 달러, 우리 돈으로 6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준 셈이다. 한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진 유튜브와 각종 소셜미디어네트워크의 콘텐츠는 조회수가 수만회에 그쳤다. 콘텐츠에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중국의 매력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연출된 듯한 장면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NYT는 “아마 유튜브가 아예 중국 내국인들이 전혀 볼 수 없게 막혀있지 않았다면 조회수는 수백만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자신들의 매력, 자신들의 소프트파워를 중국인은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이 콘텐츠의 목적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외국인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강요된 소프트파워.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은근슬쩍 맺은 뒷거래로 이뤄진 소프트파워이기 때문이다.

‘관시(關係)’는 무슨 일이건 정부나 공산당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절대 이뤄지지 않는 중국적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 관시가 소프트파워 형성에 작용되는 나라. 무척이나 긴 NYT의 기사를 읽는 동안 국가권력과 전혀 관계없이 자발성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소프트파워의 세계에까지 권력을 ‘첨가’하는 곳이 중국이란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서구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마저 반중(反中)정서가 이렇게 커진 것도 이런 일들이 중국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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