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여의춘추-손병호

[여의춘추] 국민의힘, 수권정당 역량 갖췄나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국민 상식으로는 해선 안 될 일을 버젓이 하고, 비난 여론이 커지니까 금방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한다. 그런 뒤엔 자기들끼리 ‘없던 일로 한 것 참 잘했다’며 손뼉 쳐주고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또 선거를 도와 달라고 찾아온 대선 후보한테 누굴 공천해 달라고 요구하고, 화가 난 후보 측이 앞장서서 이를 폭로하면서 볼썽사나운 설전을 벌인다. 최근 보름 사이 제1야당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은 정치 쇄신의 일환으로 곽상도 전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대구 중·남의 3월 보궐선거 때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재원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당의 무공천 방침에 반발해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돼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당내에서조차 이기적 행태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틀 뒤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자 이준석 당대표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김 최고위원의 선택에 감사를 표한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언젠가 더 큰 지지와 성원으로 보답할 것이다.”

이 일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 며칠 전엔 홍준표 의원이 윤석열 대선 후보를 만나 3월 보궐선거 때 본인과 가까운 2명을 공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이 공개 석상에서 홍 의원을 ‘구태’라고 비판했고, 이에 홍 의원은 후보 측이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며 본인을 출당시켜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며칠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홍 의원은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한다며 선대위 상임고문직을 수락했고, 권 본부장은 3일 당 회의에서 “홍 의원에 경의를 표한다”고 칭송했다.

대선에서 이겨보려고 당이 내놓은 쇄신 조치에 다른 사람도 아닌 최고 지도부가 배지를 달겠다고 곧장 반기를 드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틀 뒤 이를 번복했다고 나중에 더 잘 될 것이라면서 그 어떤 징계나 경고도 없이 그냥 넘어가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박빙의 선거를 한 달여 남긴 엄중한 때에 대선 후보에게 누굴 공천해 달라고 하는 건 무슨 황당한 정치인가. 그런 창피한 일을 쉬쉬하며 숨겨도 모자랄 판에 선거를 총지휘하는 사람이 언론에 폭로하는 건 또 뭔가.

보름 사이 생긴 일만 거론해서 이 정도이지 국민의힘에선 이전에도 희한한 일들이 숱하게 많았다. 사흘이 멀다 하고 당대표와 대선 후보 측이 싸우고,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사사건건 부딪쳤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를 놓고서도 지난한 갈등을 벌이다 결국 최악의 모양새로 갈라섰다. 중도 인사로 영입했던 김한길 전 새시대준비위원장도 단 몇 주 만에 선대위를 떠났다. 지난 몇 개월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던 게 제1야당의 민낯이었다.

국민의힘을 보노라면 과연 수권정당이 되겠다는 당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 때가 많다. 윤 후보 지지율에 취해 구태를 반복하고, 당을 쇄신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다수 지지자들은 문재인정부가 싫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지, 국민의힘이 정권을 이어받을 만큼의 역량을 갖췄기에 지지하는 건 아닐 텐데도 말이다.

여당은 86세대를 비롯한 세력 교체에 나서겠다고 시늉이라도 하고 있지만 세력 교체가 더 절실한 국민의힘 쪽에선 감감무소식이다. 영남 몰표에 기댄 정치, 토호 세력과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공천, 부자·엘리트·웰빙·비리 정당 이미지, 약자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인색한 보수,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막말과 여성 비하 발언 등 국민의힘이 쇄신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는 지난해 6월 당대회 때 경선 주자들과 소속 의원들 스스로 언급한 문제점들이다. 그들 말대로 국민의힘은 정당문화 자체를 전반적으로 싹 바꿔야 하는데, 그런 걸 일절 하지 않은 채 정권을 달라고 하고 있다.

남은 한 달 동안 국민의힘이 쇄신을 통해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의지를 보일지가 대선 승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된다. 지금은 윤 후보가 정권 교체의 상징성을 선점했지만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통해 그것을 실현할지는 선거 막판까지도 계속 고민하리라 본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승리해도 과연 현재의 당 문화로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그래서 문제가 있다면 정권을 잡기 전에 쇄신책을 제시해야 한다. 당이 그걸 못하면 윤 후보라도 해야 한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