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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게 물감 쌓아 돌에 새긴 듯… 연필로 그린 일상 풍속도

문성식展, 국제갤러리 부산점
소박한 재료·소재… 박수근 연상
옛 그림 재해석한 작품도 눈길

문성식의 ‘겨울나무’(2021, 캔버스에 유채, 연필, 27.4×19.2㎝). 두터운 흰 물감 층에 연필로 그어서 일상 풍경을 담는 문성식의 회화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하다. 작가는 “이제는 베니스비엔날레 최연소 작가라는 중압감을 벗었다”며 “너무 애써 그리지 않고 이 정도면 됐다 싶게 그린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어머, 박수근 그림 닮았네!”

전시장에 들어선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럴 만했다. 희끄무레한 바탕에 잎을 다 떨어뜨린 겨울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소박한 풍경화는 국민작가 박수근의 유명한 작품 ‘나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옥 마루가 작업실이었던 박수근은 국전에 출품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작은 그림을 그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덕분에 화강암에 새긴 암각화 같은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하는 문성식(42·사진) 작가의 개인전을 최근 찾았다. 흰 벽에 작은 그림들이 앞으로 나란히 하듯 줄지어 진열된 게 정겨웠다. 작은 캔버스에는 두텁게 흰 물감을 쌓아 올린 바탕에 돌에 새긴 듯 연필로 그린 꽃과 나무, 사람 등 주변의 평범한 풍경이 담겨 있었다. 재료와 소재에서 느껴지는 소박함에서 문성식은 우리 시대 박수근에 비유할 만했다.


문 작가는 40대 초반이다. 그럼에도 국제갤러리에서 2011년 2019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전시를 할 만큼 중량감이 있다. 2005년 25세의 나이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연소 작가로 참여하며 미술계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공부하던 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이래 ‘연필로 그리는 화가’로 통했다. “연필은 회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로 즉흥적이며 소박하다”는 것이 이유다. 연필의 소박한 속성은 꾸미지 않고 언론 앞에 나타나 조곤조곤 말하는 작가의 태도와 닮았다. 예전 병들고 힘없는 노인 드로잉으로 사람들을 뭉클하게 했던 그는 지난 전시부터 연필을 사용하는 자신만의 유화를 고안해 변주를 하고 있다.

캔버스에 표현된 돌 같은 질감은 여러 공정을 거친 끝에 나온다. 먼저 돌의 효과를 내기 위해 페이스트(종이 반죽)를 펴 바르고 그 위에 검은색을 칠한다. 다시 흰색 물감을 바른 뒤 물감이 꾸덕꾸덕해지면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왜 작은 캔버스에만 그리는지 물었더니 “그게 팔을 뻗어 연필로 그리기에는 가장 적합한 사이즈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반젤리 상태의 유화 물감 위에 연필을 휘두를 때 화가로 살고 있다는 실존적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경북 김천 출생의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활동하다 수년 전부터 부산에 내려와 산다. 번잡한 메트로폴리탄을 벗어난 뒤의 화폭 속에는 고향 김천에서 일어난 추억의 에피소드, 부산의 도시 뒷골목에서 만나는 그저 그런 풍경들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어릴 적 마당에서 닭을 잡던 아버지, 집안 행사로 만났지만 한바탕 싸움이 난 뒤 멋쩍어서 정원을 배회하는 가족들, 부산의 동네 상가 건물에서 목격한 불량 청소년들, 부동산을 보러온 중년의 부부 등이 그렇게 만화 컷처럼 담겼다. 나리꽃, 매화, 능수벚꽃, 석류나무, 모과나무 등 유난히 꽃과 나무가 많다. 모두 고향 집에서 마주했던 소재들이다. 너무 밋밋해서 좀체 멋있게 그려지지 않는 동네 산도 즐겨 그리는 그는 “안 그리는 게 없는 화가이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 금강산도, 만폭동도 등을 연상시키는 작품들도 전시장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현재의 풍경만이 아니라 옛 그림을 차용해 재해석한 그림도 문성식표 연필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28일까지.

부산=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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