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대담] “교회는 좌·우로 치우쳐선 안 돼… 중간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자”

[위드 코로나 목회를 말하다] 한국 교계 원로 박조준 목사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조준 목사. 그는 “한국교회는 용기와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들은 각성해야 하며 교회는 코로나 때문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박조준(88) 목사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원로 중 한 명이다. 서른여섯 살이던 1972년 한국 개신교 장자(長子) 교회로 불리는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그는 군부 정권에 밉보여 84년 영락교회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곧고 우직한 그의 활동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박 목사는 서울 갈보리교회를 개척해 목회 활동을 계속했으며 교회들이 교단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고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를 설립, 많은 후배 목회자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WAIC 사무실을 찾아간 건 박 목사로부터 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회가 좌나 우로 치우쳐선 안 된다. 중간에 서서 하나님의 뜻만 바라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대담=이명희 종교국장

-코로나 시대를 맞은 지 2년이 지났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이 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게 만든 기회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한국교회도 그중 하나다. 교회는 곧 ‘모임’이다. 성도끼리 모여 서로 힘을 주고받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가 교회다. 그런데 모일 수가 없으니 교회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개척교회가 겪는 고충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문 닫은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니다. 어떤 전문가는 이번 팬데믹이 10년은 더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던데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장기전을 대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장점도 있다. 가령 내가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면 많게는 500명씩 접속하고 세계 곳곳에서 연락이 온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지 않나.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이대로 내버려 두진 않으실 거다.”

-이번 팬데믹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벨탑 얘기를 해보자. 바벨탑은 인간이 세상 꼭대기까지 갈 수 있다는 교만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지능으론 불가능한 게 없다는 식의 얘기를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살피면 이건 교만이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욕망을 내세울 때 세상은 정글로 바뀌곤 했다. 정글은 곧 동물의 세계다. 사람이 동물처럼 돼버린 곳, 그것이 곧 정글이다. 백신이 나와도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면서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뭔가를 할 수 없다고 인정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팬데믹 초창기였던 2020년 4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는 지금이 “한국교회 갱신의 출발점”이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약 2년간의 한국교회를 평가해 달라.

“한국교회가 코로나 이후 보여준 모습은 별것 없었다. 현실에 안주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답답할 때가 많았다. 이 땅의 교회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코로나 탓에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상 유지’를 하니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곳도 많다. 그런 곳에선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적당히 하자’는 생각으로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 같다. 목사들이 좀 깨어났으면 한다. 일부 목사는 대기업 회장처럼 산다. 호텔 아니면 식사 약속을 안 잡는 사람도 있더라. 목사가 10만원짜리 밥을 왜 먹어야 하나.”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능력 있는 교회가 뭔지 생각해보자. 바로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교회다.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이는 곳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부흥하는 교회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교회학교는 위축되고 신학대는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바로 생명을 살리는, 능력 있는 교회가 보이지 않아서다. 고대 시기 초대교회들이 있던 자리에 가보면 교회가 있던 터랑 기둥뿌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걸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는데 한국교회도 훗날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먼 미래에 이 땅에 교회가 사라지고 터만 남는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

-한국교회 원로들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바른 소리’를 하려고 노력했다. 1970년대 미국 카터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냈을 때 1500명 정도를 모아서 미국 대사관을 향해 데모를 벌인 적이 있다. 내가 앞장을 섰는데 경찰이 이러면 안 된다면서도 길을 열어주더라. 결국 주한미군 철수는 없는 일이 됐는데, 교회가 사명감을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느꼈었다. 목회자들이 나서야 할 때는 나설 줄 알아야 한다. 원로 목회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 개신교인이 1000만명에 달한다고 해서 힘이 생기는 게 아니다.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대접받을 때는 앞으로 나가고 핍박받을 땐 뒤로 빠지는 건 목회자의 자세가 아니다. 자본주의에 너무 물들면 인격을 허투루 여기게 되는데, 일부 목사들은 돈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성도를 구별해 대하더라.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목사들이 목회의 중심으로 여겨야 할 것은 항상 영혼 구원이다.”

-WAIC가 한국교회 지형도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교회가 교단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교회 교단이 200개 정도라고 들었다. 많은 교단이 난립하게 된 건 교리 차이 때문이 아니다. 교권 다툼의 결과다. 나는 교권을 놓고 다투는 건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권에 매몰되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는다. 교단을 떠나서, 정치를 벗어나서, 예수님의 말씀만 믿으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WAIC를 만들었다. 교회를 돕는 일에만 집중하는 곳이 WAIC다.”

-굴곡진 삶을 사셨는데 인생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거나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한경직 목사님에 이어 영락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나는 아직도 한 목사님을 목회자의 표본이라고 여긴다. 당시 나는 영락교회 담임이 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목사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고, 언제든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영락교회를 맡게 됐다. 담임목사가 됐을 때 영락교회 교인이 1만5000명 정도였는데 나중엔 7만500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렇게 교회 규모가 커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은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교회의 ‘능력’이 생긴다. 인생을 돌아보면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후회되는 게 없다. 외람된 말이지만 사람들이 나처럼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도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불평이라는 걸 모른다. 한국교회 모든 성도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거다.”

-한국교회는 어떤 평가를 받는 곳이 돼야 하나.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 소금이라는 게 뭔가. 소금은 자기 자신을 녹여서 맛을 낸다. 하지만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가령 불교에서 뭔가 항의를 하면 크리스천 국회의원들이 사찰에 가서 절을 하기도 하더라. 교통사고가 나면 책임은 신호등에 있는 게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의 눈은 CCTV처럼 항상 우리들 위에 존재한다. 한국교회는 사회의 양심이 돼야 하고 그런 평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까.

“나는 항상 기도할 때 나라를 위한 기도가 첫 번째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세울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투표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고, ‘이렇게 해야 나라가 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초지일관의 태도를 보여주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정치만 잘하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인은 1등 민족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 그런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됐으면 한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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