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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한·일 연극 교류와 예술의 힘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일본 정부가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당초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국 반발 등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집권 자민당 내 강경파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앞서 페이스북에 한국과의 ‘역사전쟁’을 운운하며 우익 세력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일본에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만큼 자민당 정부는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에 대한 강경 태도를 고수할 게 분명하다.

한·일의 정치적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지만 문화예술 분야 교류는 코로나19 속에서도 꾸준히 이뤄지는 모습이다. 물론 국제적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교류에 대한 열기는 오프라인 못지않다. 11~13일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리는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은 바로 한·일 연극인들의 뜨거운 교류 의지와 깊은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7개 연극단체가 2000년 발족한 ‘일한연극교류센터’는 한국 연극 정보를 담은 뉴스레터를 연 4회 발행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일본에서도 한국 연극 정보를 온라인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엔 유일했다. 일한연극교류센터는 2002년부터 한국 현대희곡을 일본어로 번역해 낭독공연한 뒤 출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 연극계에서도 2002년 카운터 파트너로서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만들어져 이듬해부터 일본 현대희곡을 한국어로 번역해 낭독공연한 뒤 출판하기 시작했다. 한·일 양측이 격년으로 행사를 중단 없이 진행, 올해 20년이 됐다.

그런데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연극 교류가 시작된 지 5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바로 1972년 3월 서강대에서 한국 극단 상설무대의 ‘금관의 예수’와 일본 극단 상황극장의 ‘두 도시 이야기’의 합동공연이 이뤄진 것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에도 양국 연극계의 교류는 없었는데, 일본에서 소극장 실험극 운동을 주도했던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연극’의 간판이던 극작가 겸 연출가 가라 주로가 서울 공연을 몰래 추진하다가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투옥까지 됐던 시인 김지하를 소개받은 뒤 의기투합해 성사됐다. 한국 당국의 허가 없이 게릴라식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연극계 관계자들과 학생 등 500여명이 관람했다.

한·일 양국 연극사에서 일대 사건이었던 이 합동공연이 이뤄진 배경에는 당시 일본 문화예술계가 한국 예술가와 지식인에 대해 강한 연대의식을 가졌던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국 예술가와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강한 지지를 표명했었다.

1979년 일본 극단 스바루 및 한국 극단 자유의 교환 초청공연을 통해 정식 교류에 나선 이후 양국 연극계는 본격적으로 소통에 나섰다. 일본 연극계의 경우 전쟁이나 가해의 역사가 일본에서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며 사회성 짙은 한국 연극에서 공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한·일 연극 교류를 통해 양국의 근대사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본 극작가들이 시인 윤동주, 명성황후 시해사건, 위안부 문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연극계도 2000년대 이후 일본 연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거대 담론이 쇠퇴하면서 현대인의 삶과 일상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일본 희곡이 한국에서 자주 무대화돼 평단과 대중 모두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한·일 연극계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습은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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