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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신인플레와 질소과자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핫한 경제지표는 40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 미국의 물가상승률인 듯하다. 우리나라 증시 투자자들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소수점 이하 숫자까지 챙겨야 할 정도로 롤러코스터 장세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무한 발권력으로 지난 2년간 수조 달러를 찍어내 인플레이션에 일조한 미 중앙은행이 돈줄을 조여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리려니 부담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힘없는 개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하는 건 겉으로 드러난 물가지표만은 아닌 듯하다. 기업들이 코로나발 공급 병목 등으로 치솟은 비용을 소비자가격에 직접 반영할 경우 소비자 반발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과자업체 몬델리즈의 경우 지난달 오레오 과자 가격을 6~7% 인상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이즈의 과자를 출시해 사실상 가격을 추가 인상했다. 가공식품 업계에서 가격은 그대로 둔 채 과자 등의 양을 줄이고 질소로 봉지 용량을 채우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그나마 애교에 가깝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호텔·항공업 등 서비스업뿐 아니라 실내 자전거업체 펠로톤 등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새로운 옵션을 도입해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펠로톤은 자전거 배달료와 조립 비용을 별도로 받고 있다. 호텔의 경우 이용료는 그대로 놔둔 채 객실 침대 시트 교체주기를 줄이거나 아침식사를 간단한 스낵으로 바꾸고 사우나, 헬스클럽 등 편의시설의 문을 닫는 식이다. 디즈니랜드는 호텔에서 리조트까지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했다. 국내에서도 스포츠 레저업체들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사우나 등 편의시설 운영을 중단하고도 이용요금은 그대로 유지하는 모르쇠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미 정부는 최근 ‘쓰레기 수수료(junk fee)’로 불리는 이런 숨겨진 비용을 적발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물가 통계 당국은 ‘질소과자’처럼 제품 용량을 줄이는 눈속임의 경우 일일이 제품을 추적하고 있지만 일반화하기 어려운 형태의 서비스 중단 행위는 물가 반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매출 등을 부풀려 장부를 조작하는 분식회계나 가격 담합 등은 형사처벌까지 받는 중대 범죄행위로 통한다. 또 최근 배터리 성능에 대해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에 직면한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처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받는 경우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등의 제재 수단이 있다. 이에 비해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도 모르게 돈을 갈취하고 심지어 화폐착각 증세까지 일으키지만 도덕적 지탄에 그칠 뿐이다. 2018년 국내 업체 오리온이 과자업계에 만연한 질소과자 논란이 일자 ‘촉촉한 초코칩’과 ‘젤리밥’의 양을 각각 33%, 12% 늘린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스스로 시정 행위’는 오리온 한 곳 정도에 머물렀다.

기업의 매출 신장이 고용 증가로 이어지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분위기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매출 신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창출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숙박음식, 정보통신, 사업시설, 부동산업 등의 업체들은 가격 경쟁에 시달릴 경우 비용이 가격으로 전가되기 어려워 고용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 큰 문제는 슈링크플레이션은 통화 및 경제 정책을 왜곡시켜 중앙은행과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야기한다는 점에서 결코 ‘마케팅 전략’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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