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해 아래 새것이 없거늘 값진 믿음의 유산 두고 머나먼 길을 돌아왔네

정통신앙의 가치 새롭게 조명한 기독 변증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게티이미지뱅크

영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 K. Chesterton·1874~1936·아래 사진)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정통 기독교 지지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관념이 아니라 삶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역설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최대한 다시 파고드는 사람이다. 나는 내 안의 이단적 요소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걸 다시 한번 정련하니 순수한 진리가 나타났다.” 그가 오랜 씨름 끝에 발견한 것은 실은 오래전에 구축돼 있던 정통파 신앙이었다.


그의 이름이 다소 낯설다면 시골 신부가 등장하는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5권까지 출간된 ‘브라운 신부’는 그를 영국의 추리소설 계보에서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또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과 그의 작품을 읽고 기독교로 회심한 C. S. 루이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루이스는 체스터턴을 알게 된 뒤 “강력한 무신론자로 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체스터턴의 글을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 켄싱턴에서 태어난 체스터턴은 세인트폴을 졸업하고 슬레이드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성공회 신자였으나 그는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주간 신문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수백 편의 시, 다섯 편의 희곡,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약 200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국내 번역된 그의 책은 ‘브라운 신부 전집’ ‘목요일이었던 남자’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아폴로의 눈’ 등이 있다.

온전한 정신 vs 광기

“나는 열두 살 때 이방인이었고 열여섯 살에 이르러는 완전한 불가지론자가 되었다”라고 말한 그가 어떻게 신앙인이 됐을까? 그를 기독교 신앙으로 안내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반기독교적 모더니즘 사상이었다. 기독교를 향한 다양한 비판을 접하는 중에, 비판자들 안에 내재한 의심과 절망을 포착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독교로 회심했다. “나를 정통 신앙으로 되돌아가게 해 준 것은 헉슬리와 허버트 스펜서와 찰스 브래들로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의심에 대한 최초의 의심을 심어 주었다.”


그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모순되는 주장과 힘겹게 씨름했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는 모든 악덕을 저질렀다고 비판받는 것 같았다. 당시 교회는 너무 부유한 동시에 너무 가난했고, 힘이 없는 동시에 전쟁광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친여성적이면서 반여성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런 비판을 받는 것은 실제로는 균형을 대변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체스터턴은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역설에 있다고 봤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임과 동시에 가장 큰 죄인이다.’ ‘기독교인은 자비를 발휘해 죄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죄악을 증오한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끝없는 역설 때문에 비난을 받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정통 신앙은 이런 두 가지 격정적인 면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정통 신앙은 무겁고 따분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이며 흥미진진한 인생의 모험이다. 정통 신앙이란 두 가지 상반된 열정을 나란히 타오르게 해주는 초인간적인 역설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정신은 경직된 태도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역설을 인정하고 내면의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가 생각하는 정통 신앙에 대한 반대개념은 한 가지 극단에 빠져서 정신의 위축을 낳는 ‘광기’였다. 광기에 대한 치료는 역설을 인정하면서 신비주의의 도움을 받을 때 가능하다는 것.


“이방 사상은 대칭으로 균형을 잡아서 똑바로 선 대리석 기둥과 같았다. 기독교는 주춧대를 건드리면 흔들거리면서도 거기서 파생된 것들이 서로 균형을 잡아 주기 때문에 천 년 동안 보좌에 놓여 있었던, 울퉁불퉁하고 거대한 낭만적인 바위와 같았다.”(‘정통’ 중)

체스터턴이 살았던 시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다. 모더니즘 공산주의 파시즘 평화주의 결정론 다윈주의 우생학 등 다양한 사조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각종 사조를 연구할수록 점점 기독교에 끌렸다. 기독교야말로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세력들에 대항할 유일한 보루라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에 탄생한 것이 기독교 옹호론의 고전으로 불리는 ‘정통’(Orthodoxy)이었다. 정통은 희랍어로 바른 의견, 바른 생각, 바른 가르침을 의미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세상은 ‘바른 생각’을 시대에 뒤진 것으로 배격했다. 그러나 그는 서른넷이라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올바른 신앙을 담은 ‘정통’을 집필했다.


자연은 ‘인간의 자매’


그는 ‘정통’의 서두를 한 요트 조종자의 비유로 글을 시작한다. 모험을 떠난 요트 조종자는 자신이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기뻐하지만, 상륙한 땅은 알고 보니 그가 떠나왔던 잉글랜드의 국토였다. 체스터턴은 이 비유를 자신이 찾은 신앙 이야기에 적용했다. 그는 힘들게 공부한 인생 철학을 정립하면서 그것이 당대 19세기 후반을 앞서가는 사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이미 1800년 전에 존재했던 사상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가 발견한 인생철학은 기독교 신앙 혹은 정통파 신앙이었다. 전통을 낡은 것으로 일축하면서 과거의 사람들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지적이고 계몽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찔림을 준다.

‘정통’에서 그는 자연은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라 자매일 뿐이라고 단호한 주장을 펴면서 범신론 및 현대 우주론적 신앙에 맞선다. 또 이성을 믿으려면 반드시 신앙이 필요하다고 지적함으로 이성과 신앙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설정하려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품되 진리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말아야 했다. 요즈음 사람이 내세우는 부분은 사실 내세우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바로 그 자신이다. 그가 의심하는 부분은 마땅히 의심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바로 신적 이성이다.”


무엇보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따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끊임없이 자신을 계몽시켜주는 살아 있는 스승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교회는 죽어버린 스승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스승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분명 내게 어제도 가르침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내일도 분명 가르침을 줄 것이다. …나는 뼈저리게 실감했다. 첫째, 세상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신비한 힘에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의미 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내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예술 작업처럼 무언가 인격적인 것이 존재한다.”(‘전통’ 중)

그는 무신론자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은 진정으로 감사를 느끼는데 정작 감사할 대상이 없는 순간이라고 했다. 또 기쁨, 믿지 않는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이 가진 엄청난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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