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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질문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일곱 살 아이가 과학자인 아버지에게 물었다. 가족 여행으로 찾은 광활한 습지 지대에서 쌍안경으로 무언가 관찰하던 중이었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응시하는 마음에는 새로운 질문이 생길 만하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심오하고 엉뚱한 질문에 아버지는 “의미는 없어”라고 답했다.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혼돈만이 우리의 지배자라고 알려준 아버지. 사람은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 아니 사람이란 존재는 지구의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할 수 있다고 요점까지 정리해준다. 일곱 살 아이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그렇다면,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학교에는 왜 가며 종이에 풀로 마카로니를 왜 붙이는 것일까.

아이는 유년기 동안 이 의문에 붙들린다. 자라서 과학 전문기자가 된다.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전 세계 독자를 놀라게 한 룰루 밀러의 이야기다. 십대에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우울했던 룰루는 대학 진학 후 한 남자를 만나 함께 살며 활기를 얻는다. 과학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돕는 일자리도 얻는다. 환희를 느끼며 일하고 사랑했으나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을 잃고 혼돈 속에 놓인 룰루는 무언가 붙들고 싶어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발자취를 좇기 시작한다. 그의 자료를 샅샅이 구하고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처방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자연계 질서를 찾아내고 동식물 지위를 탐구한 생물학자이자 2500여종의 물고기를 발견한 어류학자이며 미국 스탠퍼드대학 초대 총장을 지낸 교육가인 그라면 무의미를 격파했으리라 믿었다.

엄청난 재난도 데이비드의 삶의 신념을 흔들지 못했다. 1906년 3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그의 물고기 연구소를 파괴했다. 30년 동안 수집하고 연구한 물고기 표본들이 에탄올 병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평생 해온 일이 거의 수포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데이비드는 허망함에 짓눌리지 않고 ‘낙천성의 방패’를 갖추고 자신의 일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모든 삶의 에너지를 모아 목표를 추구하면 다 된다고 믿으며 로봇처럼 움직였다. 이 대목에서도 룰루는 데이비드가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줄지도 모른다고 희망했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데이비드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우생학 신봉자였다. 지구상에서 제거해버리고 싶은 종류의 사람들, 빈민들과 장애인들, 도덕적 타락자들을 자연에 존재하기엔 부적합한 자로 분류하고 노골적으로 처단했다. 경이로운 글쓰기, 과학 논픽션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는 찬사가 독자들 사이에 이어지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 여성 기자의 자전적 기록이며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인물의 오류와 독선에 대한 보고서다. 책 출간 이후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학생들과 직원들의 항의, 졸업생들의 시위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책의 영향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건이다.

책에는 ‘민들레 원칙’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인용된다. 민들레는 잡초로 여겨지는 한편 경작해야 할 가치 있는 약초이기도 하다. 똑같은 식물이 잡초로도 약재로도 존재한다. 인간도 분명 그럴 것이다.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라고,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없다고 룰루는 단언한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은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게 인식하는 생물 분류법은 이제 폐기돼야 할 진실인 것이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메리 올리버 시인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질문하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생명에는 분류와 지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룰루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이 중요한 화두를 세계에 던졌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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