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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문명과 야만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지난달 미국에서 일어난 일 중 하나.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 94년 만에 처음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번에 작품상을 받은 영화 ‘코다’에서 트로이 코처와 부부로 출연한, 역시 청각장애 배우 말리 매트린은 1987년 ‘작은 신의 아이들’로 일찌감치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장애인 이야기로 세계 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영화는 여럿 있었다. 1994년 톰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가 그렇고, ‘제8요일’도 그렇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총 6개의 상을 받았다. ‘제8요일’은 파스칼 뒤켄과 다니엘 오떼유가 주연을 맡아 그해 칸 영화제에서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벨기에 출신 배우 파스칼 뒤켄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도 다운증후군 환자다. 비교적 최근 영화 중에서는 2017년 ‘셰이프 오브 워터’도 있다. 샐리 호킨스가 언어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연기했는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영화들은 모두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모두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라는 기본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순수하게 자라난 주인공이 자신의 달리기 재능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성공했으나 인생이 행복하지 못한 남자가 ‘장애를 앓고 있지만’ 때 묻지 않은 영혼을 가진 또 다른 주인공을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는 이야기, ‘장애를 가졌으나’ 자신이 맡은 청소일을 성실하게 해온 주인공이 괴생명체를 만나 교감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가 스토리텔링의 기본 공식쯤 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식의 캐릭터 설정은 이제 좀 진부하다.

그런 점에서 ‘코다’는 기존 영화들과는 달랐다. 트로이 코처와 말리 매트린, 다니엘 듀런트까지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3명이나 출연한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에게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의 역할을 떠맡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장애인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이야기다. 이 가족은 사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세상의 모든 가족이 그렇듯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다 크게 갈등하고 싸운다. 주인공 루비가 미술이나 스포츠가 아니라 하필 노래에서 재능을 발견했다는 것이 비로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영화 제목인 ‘CODA’가 Child of Deaf Adult, 즉 청각장애 부모를 둔 아이를 뜻하는 말이자 악곡 끝에 붙는 종결 부분을 뜻하는 음악 용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감독의 작명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쉽게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요소를 하나의 단어로 절묘하게 동일화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우리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에 이어 아카데미를 다시 한번 다양성의 너른 세계로 이끌었다.

백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받던 아카데미는 최근 부쩍 철이 들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억울함과 관심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이 모두 지하철을 점거해서 ‘최대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입니까?”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 당연히 누려야 할 대중교통 이용권을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를 두고 나온 말이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사회적 약자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과연 문명인가? 보수적이라는 미국 아카데미가 장애인과 소수자의 삶에 눈을 돌릴 때에도 아직 눈을 뜨지 못하는 이들에게 재차 묻고 싶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왜 묵음으로 처리했는지 아느냐고. 여전히 야만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가 알려주지 않는 진실을 영화는 종종 알려준다. 그런 걸 ‘경종’이라고 한다. 인간의 문명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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