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내일을열며

[내일을 열며] ‘그림책’이라고 불러주자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지난달 이수지 작가가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는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작가 개인의 영광이자 한국 그림책 동네의 경사다. 그림책 동네에서 이번 수상을 바라보는 느낌은 각별하다. 한국 그림책의 실력을 보여줬다는 의미 이상이다.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이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됐다는 감격 같은 게 비친다.

그림책은 그간 동화나 아동문학에 속해 있었다. 독립적 장르로 불려지지 못했다. 네이버에서 이수지를 검색하면 ‘동화작가’라고 나온다. 교보문고 온라인서점에선 ‘아동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책은 동화가 아니다. 동화가 글 중심이라면 그림책은 그림 중심이다. 동화가 작가들의 세계라면 그림책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세계다. 동화는 글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그림책은 글이 없어도 된다. 이수지 그림책에는 글이 거의 없다. 글 없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이수지는 어디서든 자신을 ‘그림책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림책을 어린이책으로만 취급하는 것도 문제다. 이수지의 그림책은 어른들에게 더 인기다. 그림책을 즐기는 어른들은 이미 많고 점점 더 늘고 있다. 그런데도 서점에서 그림책을 찾으려면 어린이책 코너에 가야 한다. 도서관에서도 그림책을 따로 구입하지 않는다. 그림책 코너를 둔 서점이나 도서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 도서관에서는 아예 그림책을 들여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미대와 일러스트레이션학과 대학원이 있는데 학생들이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가 없다. 그림책을 어린이책으로만 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그림책은 공적 지원에서도 배제돼 있다. 2022년 안데르센상은 이수지(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외에 이현(작가 부문)도 수상 후보로 지명했다. 그런데 이현의 책들은 한국어판으로 제출됐다. 번역비를 구하지 못해 영어 번역을 못 했기 때문이다. 이수지의 경우 그림으로 된 책이고 해외에서 많이 출판됐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심사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현의 책들은 번역이 되지 않았으니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다. 가요 영화 문학 등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림책이나 아동·청소년문학에는 이런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수지와 이현을 안데르센상에 추천한 곳은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회)의 한국위원회 KBBY이다. KBBY는 한국 작가와 작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안데르센상이 중요하다고 보고 후보자 추천에 공을 들여왔다. 국내 작가들을 연구해 추천 작가를 결정하고, 그 작가에 대한 포트폴리오와 홍보물을 제작해 제출한다. KBBY는 여기에 드는 비용을 회원들 회비와 자원봉사, 회장단 갹출 등으로 충당해 왔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을 찾고 있지만 번번이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는다고 한다. 올해 안데르센상 심사위원단 10명 중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아동문학 번역가 이지원씨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은 채 1년간 진행된 심사 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이수지는 지난 2일 KBBY 기금 마련을 위해 한 명당 2만원의 참가비를 받고 온라인 토크 행사를 열기도 했다.

안데르센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문재인 대통령은 작가에게 축전을 보내 “출판 한류의 위상을 높인 이 작가가 자랑스럽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계속해서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격려했다.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고 격려해주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그림책 분야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