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코로나의 숨겨진 슈퍼 전파자

[커버스토리] 美 백신 권위자 호테즈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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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비슷한 수준으로 백신을 접종 못한다면요.”

미국의 열대의학 권위자이자 백신 전문가 피터 호테즈(63) 교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와 동료 연구진은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도 코로나19 종식과 건강 형평성을 위해 특허를 포기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1일 미국 텍사스주 베일러의대에 재직 중인 그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테즈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코르베백스’를 개발한 뒤 특허를 포기했다.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백신을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단백질 재조합 방식 백신을 완성했고, 이후 금전적 대가 없이 인도·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보츠와나 4개국에 기술을 이전했다.

그의 노력에도 현실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아프리카 대륙의 코로나19 백신 기초접종률은 15.37%에 그쳤다. 북미 대륙의 접종률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은 그보다 1년 가까이 이른 지난해 4월 14일(15.68%)이었다. 호테즈 교수는 이 간극에 코로나19 극복의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그가 문제의 핵심으로 꼽는 건 백신 생태계 자체의 취약성이다. 흔히 비판하는 제약사들의 특허권 행사만으로 설명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백신 연구부터 공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유럽·북미 정부와 다국적 제약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자국우선주의까지 겹쳐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호테즈 교수는 “다국적 제약사의 메신저 리보핵산(mRNA)이나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백신에 (초기 투자가) 집중됐다”며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들이 (분배 대신) 속도와 혁신에만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백신 불평등은 특정 지역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에 타격을 입혔다. 델타 변이는 지난해 3월 인도에서 최초 보고돼 5월 10일 세계보건기구의 ‘우려 변이’ 목록에 올랐다. 현 우세종인 오미크론 변이는 지난해 하반기 남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강한 확산세를 보였다. 호테즈 교수는 “(이들 변이의 대유행은) 정책 실패의 결과”라며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백신이 널리 배분돼 쓰였다면 지금의 델타, 오미크론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의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피터 호테즈 미 베일러의대 교수가 지난 2일 오전(한국시간) 국민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라이트펀드 제공

‘백신 탈식민화’라는 표현도 동원했다. 더 많은 국가가 소위 백신 주권을 얻어야 안전하게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세계 수위권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는 만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맺어 아시아권의 독자적 백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다. 호테즈 교수는 “자국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한국이나 일본은 국제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지역 내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백신 식민주의로 비화하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선 국제백신연구소(IVI)나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과거 미 국무부의 과학 특사(science envoy)로 활동한 그는 백신 외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아울러 단순한 백신 공여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며 현재 이사직을 맡고 있는 ‘라이트펀드’를 예로 들었다. 라이트펀드는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한국 정부와 생명과학기업이 협력해 설립된 비영리재단으로 중저소득국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의료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호테즈 박사는 “더 이상 ‘필요할 때 사오면 되지’라는 의존적 체제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세계 백신 보급 주도 ‘라이트펀드’는
중·저소득국 타깃 연구 뒷받침 ‘돈 안 되는’ 감염병 극복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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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백신 산업의 ‘큰 손’으로 꼽히는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BMGF)과 한국 정부, 생명과학기업들이 공동 출자한 민·관 협력 비영리재단이 한국에 있다. 라이트펀드(Right Fund)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트펀드는 중·저소득국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료 기술과 의약품, 진단기기 등의 연구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자 2018년 7월 설립됐다. 재원은 정부가 50%, 기업들이 25%, BMGF가 25%를 출연한다. 애초 올해까지 총액 500억원 규모 자금 조성을 구상했지만, 이후 기간과 총액 모두 늘어 2025년까지 총액 1300억원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설립 이래 모두 38개의 연구과제가 선정됐다. 방점은 신기술 개발보다 기존 기술의 효율화 및 가격 절감에 찍혔다. 개발된 제품이 보건의료 인프라가 미비한 국가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과 사용이 편리한 패치 형태의 백신이나, 한 번에 여러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저가형 다가백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제조사들은 이들 제품이 중저소득국에 비싸게 수출되지 않도록 라이트펀드측과 가격을 두고 사전에 협의를 거친다.

소위 ‘돈 안 되는’ 풍토병이나 신종 감염병 관련 연구를 촉진하는 것도 목표다. 말라리아나 콜레라, 뎅기열, 주혈흡충증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백신·치료제 연구가 라이트펀드의 지원을 받고 있다. 라이트펀드 관계자는 “후기 단계의 연구 개발에 비해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는 민간 투자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며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낮더라도 초기 연구를 많이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보건 당국 관계자와 국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돼있다. 특허 없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피터 호테즈 미국 베일러의대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선배격 매칭 펀드도 있다. 똑같이 정부와 생명과학업계, BMGF로 구성돼 2013년 출범한 일본의 ‘GHIT’(Global Health Innovative Technology) 펀드가 그것이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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