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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진창에 빠져버린 푸티니즘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에는 독일·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주인공이 나온다. 프랑스 혁명으로 들끓던 유럽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미쉬킨 공작은 귀향했지만 모든 러시아인으로부터 백치 취급을 받는다. “당신이 배운 그 합리주의로 이 푸른 러시아 땅이 다 품어질 것 같아?” 또 다른 주인공 로고진은 미쉬킨을 대놓고 경멸한다. 19세기 중후반 쓰인 이 소설은 지성과 반(反)지성, 세계주의와 대(大)러시아주의의 대결이다.

대러시아주의가 가장 번창했던 시절은 18~20세기 초반 로마노프 왕조가 통치하던 제정러시아시대였다. 무력을 앞세워 크림반도~캅카스~시베리아~사할린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복속하며 ‘단 하나의 슬라브족 국가’를 목표로 하던 시절이었다. 대러시아주의를 요약하면 모든 슬라브족의 중심 국가는 러시아이며, 같은 슬라브족인 모든 유럽 국가 즉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러시아에 통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1915년 볼셰비키 혁명 성공으로 집권한 사회주의 권력도 대러시아주의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철권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타타르 우즈베크 카자흐 조지아 체첸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족을 슬라브족 거주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러시아인들로 채웠다. 1000년 이상 러시아의 학정에 저항했던 우크라이나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1년 벌어진 소련의 해체는 대러시아주의의 무덤과도 같았다. 서구적 민주주의 정체(政體)가 자리 잡으면서 복속됐던 대부분의 민족이 독립한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대러시아주의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실정과 모라토리엄(국가파산) 사태 이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옐친이 직접 지목했던 후계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서다.

푸틴은 집권 초반 잠시 동안 미국·서유럽과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이내 권위주의 권력을 형성했다. 국가 기간산업을 소수의 친푸틴 인사들에게 나눠주고 석유·천연가스 수출로 쌓은 막대한 부로 러시아 국민에게 “우리는 다시 옛 소련의 영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었다. 몇 차례 헌법을 바꿔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오가며 20년을 통치했다. 그의 옆은 올리가르히(경제 독점 신흥재벌)와 푸티니즘(푸틴주의) 창안자·지지자 등이 차지했다.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푸틴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1962년생인 두긴은 소련에 비판적이면서도 소련 해체를 완강히 반대한 인물이다. 소련식 사회주의를 비판한 건 러시아 전통을 말살해서였고, 소련 해체를 반대한 건 슬라브족 단일 국가의 꿈을 산산조각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서구 근대 문명 자체를 부정한다. 전통에 기반한 영적인 삶을 파괴하고 물질주의와 폭력적 진보주의를 전파했다는 이유다. 미국 중심의 ‘대서양주의’가 지배하는 현재의 세계는 미래엔 전혀 달라질 것으로 본다. 러시아가 제반 국가·민족을 병합해 대서양주의에 맞설 것이며 결국 유라시아 지배권을 되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푸틴은 지난 2월 23일 국영TV 연설을 통해 이런 두긴 사상을 설파한 바로 다음 날 15만 병력과 탱크 전투기를 총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두 달이 다 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초 예상과는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1만명 이상 목숨을 잃었고, 승전보다 패전 소식에 더 익숙해져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전쟁 승자는 결코 러시아가 될 수 없는 상황”이란 진단까지 내린다. 라스푸티차(해빙기 늪처럼 바뀌는 땅)에 빠진 러시아군 전차들처럼 푸티니즘도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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