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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내가 뭘 도와줄까요?

강주화 종교부 차장


어제 우리 나이로 일흔인 분과 승용차를 같이 타게 됐다. 대학에서 은퇴한 분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차에 타기 전에 40대 동승자를 위해 차 문을 열어줬다. 동승자는 당황했다. “아, 괜찮습니다.” 젊은이가 연장자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는 건 흔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분은 나중에 다시 차에 오를 때도 연배가 한참 낮은 동승자를 위해 차 문을 손수 열어준 뒤 차에 올랐다.

나이에 상관없이 문을 열어주는 습관을 갖고 있는 듯했다. 따스하고 연민 많은 성품에 어울렸다. 남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는 건 작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배려는 우리 삶에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으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배려나 친절을 베풀기 쉬우니까. 존중을 경험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존중을 돌려줄 가능성이 크다.

친절이나 존중은 사람들의 역량 발휘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 심리학자 마크 무레이븐은 일명 ‘쿠키 실험’을 했다. 연구자는 절반의 참가자에게 “쿠키를 먹지 마세요. 이 실험은 의지력을 측정하는 실험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험에 참여해줘서 고맙습니다. 실험을 더 효과적으로 진행할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라고 했다. 반면 다른 절반의 참가자에게는 이런 설명이나 부탁이 없었다.

“쿠키를 먹으면 안 된다”라는 명령만 주어졌다. 다행히 두 집단 누구도 쿠키의 유혹에 넘어가진 않았다. 이후 컴퓨터 모니터에 0.5초마다 숫자가 바뀌는데 6 다음에 4가 나올 때마다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자 그룹은 이 테스트를 잘 해냈지만 후자 그룹의 결과는 엉망이었다. 무레이븐은 결과를 이렇게 해석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동기가 생성되면 과업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반면 명령만 주어지면 자율성을 잃는 느낌을 받고 근육이 훨씬 빨리 피로해지고 성과도 저조하다고 했다. 전자 그룹에 자발적 동기를 유발시킨 것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친절하게 안내하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봄, 미국에서 아이가 다닌 학교는 줌(Zoom)으로 수업을 했다.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줌 화면에는 스무명 넘는 아이들이 빼곡했다. 아이들은 질문이 있을 때 손을 들었는데, 교사는 그때마다 이렇게 했다. 아이 이름을 부른 뒤 “내가 뭘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질문이 끝나면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나는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교실에서 그런 피드백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이런 선생님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존중과 감사의 표현을 자주 들으며 자란다면 아이들도 그런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에게 단순한 업무 지시만 하지 않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하면 조직에 활기가 돌고 생산성도 커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사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직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다.

일상에서도 비슷할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가 뭔가 힘든 얘기를 꺼낼 때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하면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시위가 계속 이어질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상대방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배려와 존중은 우리 일상이나 공동체를 조금 따듯한 곳으로 만들 작은 마법이 될 수 있다.

강주화 종교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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