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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반지성주의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 연설에서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반지성주의, 자유, 성장, 국제사회 등을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맨 앞에 반지성주의 비판을 배치했다.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그러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고,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말했다. 이어 과학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반지성주의 비판을 마무리했다.

취임사는 신임 대통령의 생각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서다. 여기서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인 반지성주의가 등장하자 여러 반응이 나온다. 신선하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있다.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손질하면서 직접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이 윤석열정부에서 앞으로 중요하게 사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반지성주의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후 많이 불려나온 말이다. 당시 미국 언론과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를 해석하느라 분주했다. 그때 자주 언급된 단어가 반지성주의 또는 반엘리트주의였다. 상당수 미국인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엘리트 이미지와 지적 언어에 점수를 주는 대신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반면 기성 정치인과 언론, 지식인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속물적 욕망을 거침없이 발산하는 트럼프의 막말에 열광했다. 대중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이 의문에 답으로 제시된 게 반지성주의였다.

반지성주의는 1963년 출간된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유래한다. 컬럼비아대 미국사 교수였던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매카시즘(반공주의 광풍)과 아이젠하워를 당선시킨 1952년 대선의 밑바탕에 흐르는 대중의 정서를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그는 “내가 ‘반지성적’이라고 일컫는 태도나 사고에 공통되는 감정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반지성주의는 지성의 결여가 아니라 지성에 대한 혐오를 뜻한다. ‘과학과 진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왜 대중이 거부하는지 설명하는 개념이다. 그건 대중의 무지나 맹목 때문이 아니다. 지식인·전문가들의 위선이나 거짓말 등을 계기로 대중이 지식과 지식인을 의심하고 공격하는 경향을 말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시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현재 위기에 처했고 그 가장 큰 원인이 반지성주의라는 진단에는 동의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를 우려하면서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강조했는데 이건 하나 마나 한 소리다. 합리주의, 지성주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반지성주의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취임사의 맥락을 살피면 반지성주의는 진영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꺼낸 단어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극단적 진영 대결, 팬덤정치, 편가르기 등을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본 것이라면 어려운 반지성주의 대신 익숙한 진영 논리라는 말을 그대로 쓰면 되지 않았을까.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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