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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중환자실 업그레이드하자


최근 수도권에 문을 연 한 대학병원은 중환자실 병상 40개 전부를 음압격리가 되는 1인실로 만들었다. 1인 중환자실이 보편적인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등 선진국 병원을 직접 방문해 관리와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1인 중환자실 구성으로 의료진의 직접 관찰이 어렵다는 구조적 단점은 분산형 간호 스테이션 설치로 해결했다. 간호사가 머무는 공간을 여러 개 만들어 개별 환자의 육안 관찰이 쉽도록 했다. 또 지능형 환자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 위급 시 빠른 응급조치도 가능하도록 했다. 설계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인데, 환자 중심의 미래형 병원을 지향한다는 경영진의 과감한 투자에 박수를 보낸다.

국내에선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신규 개원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중환자실을 1인실로 조금씩 바꿔가는 추세다. 감염 관리에 유리한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1인 중환자실은 이외에도 장점이 많다. 다른 환자들의 응급 상황에 대한 감정 동요를 줄일 수 있고, 임종을 앞둔 중환자의 경우 경건한 가족 면회가 가능하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거나 지인을 병문안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급 상황에 놓이거나 세상을 떠나는 순간의 바로 옆 병상 환자 모습을 목도하면서 받은 충격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1인실에선 이런 험한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사생활 보호 등 환자 권익 측면에서도 좋은 점이 있다. 중환자실 1인실화는 세계적 스탠더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진국형 중환자실을 갖춘 국내 의료기관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최상위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조차 대다수가 한 공간에 여러 명이 입원하는 다인실 구조로 돼 있다. 적은 인력으로 한꺼번에 많은 환자를 돌보는 싸구려 의료의 전형을 고수하고 있다. 환자 권리나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는 제로에 가깝다.

다인실 구조는 또 코로나19 같은 급성 감염병 유행 시 병원 내 전파에 매우 취약하다. 감염병 중환자를 받으려면 다른 일반 중환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1인 격리를 위한 동선 분리, 음압장비 설치 등 큰 공사를 벌여야 한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에 두 차례 중환자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렸을 때 신속 진행이 안 돼 의료체계 붕괴 직전까지 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한민국이 의료 선진국이라지만 중환자실만큼은 아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중환자의학회 등 학계가 그간 중환자실 업그레이드에 대한 목소리를 줄기차게 높여왔으나 변한 건 거의 없다. 엄청난 비용과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 병원들은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메르스 때 중환자 다인실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지지부진하다 결국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지금 똑같은 얘기를 또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다행히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의 국가책임제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번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중환자실 구조 등 시스템 개선은 개별 의료기관 차원에서 추진하긴 쉽지 않아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엔데믹 시대 코로나 대응의 핵심은 중환자·사망자 관리다. 한때 1000명을 넘어 한계에 달했던 위중증 환자가 300명 선으로 줄어 의료 현장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다. 가을이나 겨울 재유행 가능성이 있고 또 다른 팬데믹 감염병이 등장할 것은 틀림없다. 언제 다시 감염병 중환자가 급증하는 사태가 올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악화할 때마다 벼락치기로 중환자 병상을 만들고 그때마다 병원을 공사판으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급속히 퍼지는 신종 감염병은 상시적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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