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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유물로 전락하는 글로벌리즘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전 지구적’이란 뜻의 영어 ‘글로벌(global)’이 익숙한 단어가 된 것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다. 세계인의 삶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국가에 머물지 않고 모두 연결돼 있다는 인식. 글로벌리즘을 고상하게 정의하면 이렇지만, 실상은 냉혹한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산물일 뿐이다.

글로벌리즘의 기초는 선진국과 중진국, 후진국의 분업구조다. 높은 인건비로 생활필수품을 싼값에 생산할 수 없던 선진국들은 ‘굴뚝산업’의 아웃소싱에 나선다. 산유국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각종 자원을 제공하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았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설계와 정밀기술은 선진국 기업이 소유하고, 여러 개의 ‘중국들’은 그저 제품을 찍어내기만 한다. 이 와중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축적한 기술 덕분이다.

글로벌리즘이 만개할 수 있던 배경은 냉전이 끝나 세계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국 간 대립 전무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현상은 FTA(Free Trade Agreement·자유무역협정)였다. 웬만한 나라는 온갖 국가들과 FTA를 맺었고 자원과 상품, 기계와 기술, 자본과 금융서비스가 동등한 경쟁규칙에 따라 교환됐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등극했을 때 처음으로 글로벌리즘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그는 최대교역국 중국과의 첨예한 무역 갈등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주의)은 지속 가능성이 없는 일종의 변종이거나 ‘돈키호테의 외침’ 정도로 여겨졌다. 글로벌리즘의 퇴락이 본격화된 건 바로 올해다. 2020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군사적 패권 대결이 본격화됐지만 세계 경제의 분업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는 듯 보였다. 애플은 여전히 중국에서 아이폰을 찍어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글로벌리즘에 찬물을 끼얹었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하던 유럽은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구조를 아예 바꿔야 했다.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에 기초한 유럽연합(EU)의 경제는 새로운 대체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정치적으로도 EU는 러시아와 완전히 절연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영세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합류를 결정하고, 그동안 무장을 풀어헤쳤던 유럽은 앞다퉈 군비경쟁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서방의 반러시아 노선은 오랫동안 지속할 전망이다. 서방, 한국과 일본은 이번 전쟁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고 있다. 정치적·군사적 대립에 놓인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 형성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말이다.

다른 또 하나의 교훈은 미국의 힘에 관한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자 전쟁의 판도는 바뀌었다. 미국이 나서자 유럽이 반러 동맹으로 결집했고, 미국이 움직이자 서방 기업들은 속속 중국으로부터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1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 주 한·일 순방 기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을 쏟아냈다. IPEF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을 규합해 추진하는 경제협의체로, 기존의 글로벌 경제 분업구조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구상이나 다름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판도는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것처럼 보인다. 20년 좀 넘게 지속됐던 글로벌리즘이 유물로 전락할지 모른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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