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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엄마의 해방 일지

강주화 종교부 차장


일단 내가 약간 촌스러운 교회 언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진지하게 봤다. 주인공 염미정은 경기도 산포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길에 매일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란 광고를 보면서 미소 짓는다. 광고가 부착된 건물은 해방교회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천인 나는 그걸 화면에서 확인한 뒤 남몰래 설렜다.

성경에서 예수는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로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들었다. 해방은 좋은 일이다. 염미정은 “억눌린 데서 벗어나고 싶다”며 회사에서 동아리 해방 클럽을 결성한다. 회원들은 해방에 대해 각자 ‘인간관계로부터 해방’ ‘책임감으로부터 해방’ ‘나 자신을 사랑하기’ 등이라고 답한다.

이들 회원처럼 염미정·기정·창희 삼남매가 각자의 해방 일지를 써 내려가는 게 드라마의 줄거리였다. 극적인 기점은 삼남매 엄마 곽혜숙의 죽음이었다. 엄마는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싱크대 공장에서 일하면서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 부엌을 들락거린다. “당신은 숟가락 딱 놓고 밭으로 공장으로 가면 그만이지, 나는 365일 빨간 날이 없어.” 혜숙이 남편에게 내뱉는 말이다. 늘 잰걸음으로 일하던 엄마는 압력솥에 쌀을 안친 뒤 잠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런데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밥 다 탔다”며 엄마를 깨우러 갔던 아들 창희는 놀라 몇 번이고 엄마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큰딸 기정은 갑자기 저세상에 간 엄마가 “분명 과로사”했다고 한다.

나는 이 장면을 친구 둘과 나란히 앉아서 봤다. 우리 셋 다 과몰입한 듯하다. 한 친구는 입에 물고 있던 치킨을 내려놓으며 “아” 하고 탄식했다. 나는 작가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항의했다. “왜 갑자기 엄마를 죽이는 거야!” 잠시 후 다른 친구가 “엄마는 죽어야 (노동에서) 해방되네”라고 했다. 혜숙은 숨지기 직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교회 다닐 때는 그나마 하루라도 쉬었지.… 어디 (내 몸에) 고장이라도 났나. 왜 이렇게 땀이 나.”

혜숙은 그러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주일에 교회 가면서 하루라도 쉬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혜숙이 죽은 뒤 아들은 집 뒷산에 엄마의 무릎 인공관절을 묻는다. 고단한 혜숙의 삶을 상징한다. 엄마가 떠난 뒤 자식들은 산포를 떠나 서울로 간다. 남편은 공장을 닫고 밭을 판 뒤 재혼한다. 엄마의 죽음은 이 가족에게 해방의 계기로 설정된다.

드라마처럼 우리 삶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아내의 노동에 기대어 공장을 운영하고 농사를 지었다. 자녀들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출근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희생양 삼은 삶은 위태롭다. 주변을 돌아본다. 혜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아침에는 아이를 챙긴 뒤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한 뒤 또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한다. 워킹맘의 생활이다. 잠자는 시간이 거의 유일한 휴식이다. 허락된다면 혜숙을 주인공으로 다시 해방 일지를 써보고 싶다. 혜숙은 일찌감치 남편에게 적정 노동을 선언하고 하루 8시간만 일한다. 주말에는 쉰다. 주5일 근무다. 그러니까 남편은 일정 소득을 포기하고 남매들은 주말에 엄마를 대신해 식사를 준비한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해방 일지가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 어렴풋이 안다. 해방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고 해방을 결단해야 한다. 노동을 나눌 사람을 찾아야 하고 적정한 일과 휴식을 위해 협상해야 한다. 우리는 해방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때로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쉽지 않더라도 나와 가족, 이웃을 위해 해방 일지를 써 내려가야 한다.

강주화 종교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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